(서울=연합뉴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15일 문재인 대통령 등 회원국 정상들의 화상회의 서명을 거쳐 마침내 출범했다. 이 협정에는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아세안 10개국을 합쳐 총 15개 국가가 참여했다. 2012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협상 개시 선언 이후 8년 만의 결실이다. 대중국 무역적자 확대를 표면상 이유로 내걸고 빠진 인도를 제외하더라도 RCEP 회원국의 지난해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은 26조3000억 달러, 역내 인구는 22억6천만 명으로, 그 비중이 각각 전 세계의 30%에 달한다. 유럽연합과 CPTP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압도하는 규모다. 인도의 가입을 계속 설득해 나가기로 했다니 이것마저 실현된다면 지구촌 인구 절반이 RCEP 자유무역 블록으로 편입된다. 협정의 정식 발효를 위해선 회원국들의 국내 비준 절차가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한국을 포함해 각국은 의회 비준 동의를 얻는 데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교역환경이 악화한 가운데 탄생한 다자무역체제인 RCEP는 자국 이익을 앞세운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를 완화해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RCEP 정상회의 발언에서 "보호무역주의에 경종을 울렸다"고 의미를 부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이번 협정은 기업 환경 개선과 공급망 안정을 이끌어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역내 경제 회복에도 커다란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이 얻게 될 혜택으로 좁혀보면 회원국 간 관세의 문턱이 낮아져 교역과 투자 활성화,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 인도네시아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우리나라 업체의 경우 현재 최고 40%의 관세를 부담해야 하지만, RCEP 발효 후엔 무관세 수준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청와대는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특히 우리의 제2 교역 상대인 아세안과의 협력과 교류 확대로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거대 경제권의 탄생이 양날의 칼인 측면을 부인하기 힘들다. RCEP는 애초 일본이 처음 주장한 아이디어였고 지금은 아세안이 주도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 다툼이 본격화하던 시점과 맞물려 RCEP는 어느덧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경제블록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 관점에서 TPP 탈퇴를 강행한 후 중국이 RCEP 논의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게 이런 선입견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문제는 조 바이든 차기 대통령이 현재 일본과 호주 위주로 운영되는 CPTPP로 복귀하거나 아예 TPP 재건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CPTPP는 물론 TPP 단계에서도 참여한 적이 없다. 한국 입장에선 TPP 회원국들과 개별 FTA를 체결한 상태여서 굳이 블록 경제권에 진입할 필요를 못 느꼈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바이든 차기 행정부가 TPP와 관련해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을 상정해 우리 정부는 철저한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대체로 국내 통상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개방형 수출의존 국가인 점을 고려해 RCEP와 상호보완 관계인 TPP에도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는 분석을 내놓는 분위기다. 다만, 중국과 일본이 강력하게 견제하고 나선다면 우리는 난처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과 스가 일본 정부의 입장 정리가 각별히 주목되는 이유다. 특히 미국의 정권 이양기에 이뤄질 시 주석 방한에 대비해 문재인 정부는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을 잘 따져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입장을 가다듬어 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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