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문학의 나라'를 자부하는 프랑스에서 서점들이 잇달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쉽고 빠르게, 때로는 더 저렴하게 책을 살 수 있다 보니 서점을 찾는 손님이 줄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다.
정부는 지난달 30일부터 프랑스 전역에 이동제한령을 내리면서 봉쇄 기간에 영업을 할 수 있는 몇몇 분야를 예외로 설정했는데 이때 책은 생활필수품으로 지정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서점을 전면 개방할 수는 없으나 포장·배달만 가능하게 허용한 식당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나중에 상품을 찾아가는 것은 가능하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과 저명한 소설가 에릭 오르세 등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서점 문을 열어야 한다고 항의했으나 정부는 상황 개선이 있을 때까지 지침은 바뀌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프랑스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까지 끊기면서 파리 대표 관광명소로도 꼽혀온 유명 서점들마저도 위기를 맞고 있다.
파리 라탱지구 생 미셸 광장 맞은편 길목을 1888년부터 지켜온 중고 서적 전문 서점 '지베르 죈'은 내년 3월로 폐점할 수 있다고 일간 르파리지앵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확한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투자가가 서점이 입점한 건물을 사들였고, 경영진과 노동조합 등과 폐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는 게 보도의 골자다.
플로랑스 베르투 5구 구청장은 지갑이 얇은 학생들도 저렴한 가격에 책을 살 수 있던 지베르 죈이 문을 닫는다고 생각하면 "너무나도 슬프다"고 말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같이 한시대를 풍미한 문인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파리의 영어책 전문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도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고서점은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비포 선셋'에서 남녀 주인공이 9년 만에 재회하는 장소로도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지난달 말 고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코로나19가 프랑스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지난 3월부터 매출이 80%가량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서점을 운영하는 실비아 위트먼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그동안 저축해놓은 돈을 다 써버렸고 임대료도 상당히 많이 밀렸다"고 털어놨다.
유명 서점도 코로나19로 휘청인다면 영세한 서점들이 겪는 고통은 더 심할 것이기에 내로라하는 프랑스 작가들까지 나서서 서점 지키기에 나섰다.
소설 '얼룩말', '팡팡' 등으로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알렉상드르 자르댕은 15일 유럽1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봉쇄 기간에도 서점들이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프랑스 남부 도시 칸에서 봉쇄 기간 문을 열었다가 벌금을 부과받은 서점들을 대신해 돈을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아이디어는 1994년 소설 '편도여행'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 공쿠르상을 받은 디디에 반코블라르트에게서 나왔다는 게 자르댕의 설명이다.
자르댕은 "다음 서점이 내야 하는 벌금은 내가 부담할 것이고, 그다음 서점은 다른 작가가 부담할 것"이라며 "그 어떤 국가도 서점을 닫을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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