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 가치사슬 배제 압박 속 한국과 첨단기술 교류강화 희망
RCEP 서명 이어 한중일 FTA 속도 내자 제안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우리 측에 '한중 사이에 민감한 문제'를 잘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이 더는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미중 신냉전 속에서 자국에 불리한 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밤 중국 외교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보도문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날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 측이 중한 사이에 민감한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함으로써 양국 간 상호 신뢰와 협력의 기초를 지켜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이 만일 중국이 '민감하다'고 간주하는 사안을 '부적절'하게 다룬다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직후처럼 신뢰가 깨져 양자 관계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로도 읽힌다.
왕 부장은 미국 대선 결과로 인해 미중 관계를 둘러싼 환경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중요한 시점에 방한했다. 외교가에서는 그가 미중 신냉전 장기화 전망 속에서 우리 측에 최소한 중립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왕 부장은 이어 "공동으로 평화·안전·개방·협력의 인터넷 공간을 구축하고 유엔 등 다자주의의 틀 내에서 소통과 협력을 심화하자"며 "다자주의와 국제법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수호하자"고 제안했다.
왕 부장의 이런 발언은 미국 정부가 중국의 5G 선도 기업인 화웨이(華爲)를 제재하는 등 중국을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배제하려는 행보를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아울러 중국은 자국을 향한 미국의 통상·기술·군사 등 다방면에 걸친 각종 압박을 약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다자주의'를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또 왕 부장은 '한중 경제무역 협력 계획 2021∼2025'를 조속히 제정해 하이테크 기술·산업 협력을 강화하자고 강조했다.
중국의 고위 외교 당국자인 왕 부장이 강 장관과의 회담에서 통상·기술 분야 이슈인 첨단기술 분야의 협력을 특히 강조한 것은 미국의 거친 압박 속에서 한국과의 공급사슬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를 강력히 원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한국에서 반도체와 화학 원료 등 많은 중간재를 수입한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제재로 스마트폰과 PC 등 많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의 한 종류인 D램의 경우 거의 전적으로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에 의존한다.
최근 중국이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체결로 자국에 유리한 경제 질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자평 중인 가운데 왕 부장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추진 의사도 밝혔다.
그는 "양국(한중)이 다자주의 협력을 강화해 RCEP의 조속한 발효를 추진하고 중일한(한중일) 자유무역지대 건설을 서두르자"고 제안했다.
이 밖에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 측은 남북 관계의 개선과 발전, 화해와 협력 추진을 굳건하게 지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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