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안치된 대통령궁에 수만 명 줄 서서 축구 영웅 배웅
한꺼번에 인파 몰려 경찰이 최루탄 쏘기도…시신 장지로 운구돼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 일대가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는 팬들도 가득 찼다.
조문 시간 마감을 앞두고 미처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탄을 동원해 통제에 나서기도 했다.
26일(현지시간) 마라도나의 시신이 안치된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 주변에는 수만 명의 조문 인파가 길게 줄을 늘어섰다고 아르헨티나 언론과 AP·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아르헨티나인들은 전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60세 나이에 세상을 뜬 마라도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도심의 카사 로사다로 몰려들었다.
오전 6시 조문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밤부터 카사 로사다 앞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린 팬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줄은 수㎞까지 더욱 길어졌다.
아르헨티나 일간 클라린의 생중계 영상엔 인근 도로에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 조문객들이 커다란 검은 리본이 걸린 카사 로사다에 차례로 들어서는 모습이 담겼다.
내부엔 아르헨티나 국기와 등번호 10번이 적힌 유니폼이 덮인 고인의 관이 놓여있고, 추모객들이 그 앞을 지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성호를 긋거나 힘차게 손뼉을 치기도 하고, 유니폼이나 꽃을 던지면서 키스를 날리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며 마라도나의 이름을 외치는 팬도 있었다.
목발을 짚은 채 일찌감치 빈소를 찾은 팬 나우엘 델리마(30)는 AP통신에 "그(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를 전 세계에 알려지게 했다"며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준 위대한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마라도나가 뛰던 아르헨티나 축구팀 보카 주니어스의 팬인 크리스티안 몬텔리(22)는 로이터에 "마라도나를 아버지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마치 아버지를 잃은 것 같다"며 울먹였다.
이날 일반 조문객을 맞기에 앞서 가족과 지인들이 먼저 고인을 배웅했다.
전 부인과 자녀들, 그리고 아르헨티나가 우승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고인의 팀 동료를 비롯한 축구선수들도 참석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부인과 함께 관저에서 헬기를 타고 카사 로사다에 도착해 조문했다.
그는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것뿐이다. 국민에게 이렇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얼마나 될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일간 라나시온은 전했다.
이날 아르헨티나 안팎의 언론은 "신이 죽었다" "이제 신이 하늘로 갔다"는 등의 헤드라인으로 '축구의 신'을 추모했다. 마라도나는 '신'을 뜻하는 스페인어 '디오스'(Dios)에 등번호 10을 넣어 'D10S'로 불렸다.
전날 대통령궁 측은 이날부터 사흘간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유족의 뜻에 따라 고인의 시신은 이날 저녁 장지로 향하게 됐다.
조문 마감 시간인 오후 4시 30분을 앞두고 미처 마라도나에게 인사하지 못한 팬들이 무질서하게 한꺼번에 밀어닥치면서 경찰과 팬들이 충돌하기도 했다.
경찰이 조문 인파의 진입을 통제하려하자 성난 팬들이 돌 등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 등을 동원해 해산을 시도했다고 AP통신 등은 보도했다.
대통령궁은 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문시간을 저녁 7시까지로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혼란은 계속됐고, 마라도나의 관이 안전상의 이유로 카사 로사다 내부의 다른 장소로 옮겨지기도 했다.
결국 고인의 시신은 7시가 되기 전 카사 로사다를 떠나 장지인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베야 비스타 공원묘지로 운구됐다. 이 공원묘지는 먼저 세상을 떠난 마라도나의 부모가 안장된 곳이기도 하다.
차량이 지나는 길목에도 팬들이 늘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국민 영웅의 마지막길을 함께 하려는 팬들의 열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공포도 넘어섰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전 국민 격리를 장기간 시행해 왔지만, 마라도나 추모 인파를 막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궁 앞에 모여 고인을 추모한 팬 중엔 마스크 없이 노래하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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