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120여명 대상 기본소득 실험…영국 의회서도 도입 주장 나와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를 계기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탄력을 받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하는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에서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해고 방지를 위한 휴업 임금 보전과 실업급여 지원, 자영업자 및 프리랜서를 위한 보조금 지원 등의 방식에 집중해왔다.
주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지원책이다.
그러나 소득과 관계없이 전 국민에게 일정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통해 가계의 기본적인 생활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독일경제연구소(DIW)는 최근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연구소는 내년 봄부터 18세 이상 성인 122명에게 3년간 매월 1천200유로(160만 원)를 지급할 계획이다.
이 실험은 지원자 모집에 150만 명 이상이 응모할 정도로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급 대상자는 자영업자와 실업자, 연금수급자 등 다양하다.
연구소는 1천300여 명의 대조군을 선정해 실험할 방침이다.
연구소의 위르겐 슈프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8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수년 동안 계속된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대한 이론적 논쟁이 사회적 현실로 옮겨가도록 하는 중요한 기회"라고 이번 연구를 평가했다.
독일 정치권에서는 아직 진보진영 내에서도 기본소득에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이 나온다.
중도진보 성향으로 대연정 소수파인 사회민주당은 선별적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노동조합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두는 사회민주당은 기본소득보다는 노조원들의 실업 방지 및 실업급여, 연금지급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시장조사기관 스플렌디드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 시민 4명 중 3명은 기본소득의 수준관 관계없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그러면서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거나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일을 줄이겠다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조사 결과는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사람들이 일하지 않기를 선호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과 다르다.
영국 의회에서도 지난 10월 기본소득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500여 명의 상·하원의원 및 지방의원들은 리시 수낙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촉발된 대량 실업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소득 실험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주당 48파운드(8만 원)를 기본소득으로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서명을 주도한 영국 자유민주당의 크리스틴 자르딘 의원은 기본소득에 대해 "21세기에 맞는 사회보장제도"라며 팬데믹 국면에서 도입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영국 내 여론도 기본소득에 우호적인 경향이다.
영국 왕립예술·제조·상업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시민의 16%가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반대한 반면 46%가 찬성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이 진행돼왔다.
핀란드는 2017∼2018년 2년간 25∼28세 실업자 2천 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실업급여 대신 월 560유로(83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기본소득을 받으며 행복감이 커졌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참가자들은 기본소득을 받지 않는 이들과 비교해 1년간 평균적으로 6일을 더 일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기본소득은 여전히 실험이나 아이디어 단계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선별적 복지 제도가 이미 체계적으로 잡혀있는 데다,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스위스는 지난 2016년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지만 77%의 반대로 도입이 무산됐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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