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안정화기구 역할 강화에 연정 의원들 "경제 주권 위협" 반발
비준안 9일 상·하원 통과 미지수…연정 붕괴 가능성도 '솔솔'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연립정부가 유럽판 국제통화기금(IMF)인 유럽안정화기구(ESM) 개혁안 승인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취약한 기반 속에 수시로 붕괴 가능성이 거론되는 연정에 또 다른 위기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6일(현지시간)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재무장관들은 지난달 30일 ESM 조약 변경안에 합의했다.
변경안은 회원국의 부채 위기 해소 및 부실 은행 정리 등과 관련한 ESM 역할·기능을 강화하되 지원을 받는 회원국에 대한 통제·감독 범위를 넓힌다는 것이 골자다.
이 개혁안은 역내 최대 부채국인 이탈리아의 반대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약 1년간 사실상 방치돼 있다가 이번에 극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더는 홀로 거부권을 고수하기 어렵다는 이탈리아의 입장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 경제 충격을 완화하고자 7천500억 유로(약 988조원) 규모의 회복기금을 도입하기로 한 게 이탈리아 당국을 압박하는 카드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회원국 가운데 최대액인 2천90억 유로(약 275조원)를 지원받게 되면서 역내 주요 경제·금융 정책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치권에서는 이번 합의의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연정의 두 축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중도 성향의 '생동하는 이탈리아' 소속 일부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연정 위기로까지 비화하는 양상이다.
이들 의원은 개혁안이 승인되면 긴축을 강조하는 브뤼셀에 경제 주권을 넘겨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출한다.
현재 분위기로는 9일 상·하원 표결에서 ESM 개혁 비준안이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ESM 비준안 부결이 연정 붕괴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정을 이끄는 주세페 콘테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연정이 붕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호언했으나 '생동하는 이탈리아'의 대표격인 마테오 렌치 전 총리는 "비준안이 부결되면 콘테 총리가 사임하는 게 순리일 것"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이탈리아 연정은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을 포함해 정치 이념과 지향점이 서로 다른 3당이 작년 9월 출범시킨 후 정책 사안마다 수시로 충돌하며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다.
연정은 우호적 군소 정당을 포함해 하원(총 321석)에서는 347석으로 비교적 여유 있는 과반을 점하고 있으나 상원(총 321석)은 167석에 불과해 몇 명이라도 이탈하면 과반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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