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장수말벌 공격에 맞서 자기 벌집 입구에 '똥칠'

입력 2020-12-10 10:30   수정 2020-12-10 10:58

꿀벌, 장수말벌 공격에 맞서 자기 벌집 입구에 '똥칠'
국제 연구팀 베트남 재래종 꿀벌 대상 연구서 첫 확인
유럽꿀벌 방어책 없어 속수무책…꿀벌 도구이용 첫 사례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꽃을 찾아다니며 꿀과 꽃가루만 수집하는 줄 알았던 꿀벌이 '집'을 지키기 위해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실어다 입구에 '똥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꿀벌이 말벌 등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보여왔지만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 밝혀졌다.
미국 웰슬리 칼리지 생물학 부교수 헤더 마틸라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베트남에서 재래종 꿀벌(Apis cerana)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미국 공공 과학도서관(PLoS)이 운영하는 개방형 정보열람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했다.
꿀벌 특히 재래종 꿀벌은 봉군(蜂群) 침입자를 공처럼 둘러싸 열에 못 견뎌 죽게하거나 '쉿쉿'하는 경고음을 내고, 무리를 지어 동시에 똑같이 움직이는 등 나름의 방어책을 갖고있었다.
그러나 베스파 소로르(Vespa soror)와 같은 장수말벌 종(種)은 집단으로 봉군을 공격해 수천 마리의 일벌을 죽이고 궁극에는 벌집 안에 있던 새끼까지 죽이는 탐욕스러운 포식자여서 지금까지 알려진 방어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베트남의 아시아 재래종 꿀벌 양봉장 3곳에서 관찰연구와 실험을 통해 재래종 꿀벌의 똥칠 전략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 꿀벌들은 V. 소로르 종이 다녀간 뒤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찾아 작은 덩어리로 만들고 벌집으로 가져와 입구에 묻혔다. 그러나 집단 공격을 하지 않는 작은 장수말벌 종인 베스파 벨루티나(V. velutina)가 찾아왔을 때는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V. 소로르 종 장수말벌이 집단공격 목표물을 표시하는데 이용하는 분비물에 노출된 벌통의 입구에 6시간 만에 다른 봉군보다 더 많은 똥칠을 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장수말벌은 똥칠이 많이 된 벌통 입구에는 덜 내려앉고, 입구에 앉은 뒤에도 꿀벌을 공격하는 시간이 94%나 적은 것으로 관찰돼, 꿀벌의 똥칠 전략이 포식자의 봉군 점령을 막아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꿀벌이 수집한 동물의 배설물에 장수말벌이 싫어하는 화합물이 포함돼 있거나 집단공격 목표물을 표시하는 데 이용한 분비물의 화학 성분을 가리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꿀벌이 식물이 아닌 물질을 수집한다는 점을 처음으로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꿀벌의 도구 사용에 관한 분명한 첫 사례를 제시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마틸라 부교수는 "아시아 재래종 꿀벌의 동물 배설물 이용은 가장 위험한 포식자로부터 봉군을 방어하기 위해 개발해온 인상적인 무기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라면서 "이는 방어책을 갖지 않은 유럽 꿀벌들이 장수말벌이 침입했을 때 쉽게 굴복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eomn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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