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 근무 경험 토대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등 20여개 작품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범수 기자 = 스파이 소설의 거장인 영국 작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e)가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블룸버그통신과 현지 언론은 13일(현지시간) 르 카레가 영국 남서부의 콘월에서 폐렴을 앓다가 하루 전에 사망했다고 소속사인 커티스 브라운 그룹 관계자 등을 인용해 보도했다.
소속사는 고인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영국 문학의 거인"이라고 추모했다. 앞서 뉴욕타임스는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발군의 스파이 소설가'라고 평가한 바 있다.
1931년 10월 영국의 남서부 해안도시인 풀에서 출생한 르 카레는 거의 60년간 20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주로 냉전 시대를 무대로 배신, 반역, 이중성 등 다양한 테마를 엮어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주요 작품에 등장하는 '조지 스마일리'는 첩보 소설 주인공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대표작 중 하나로 1963년에 출간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는 2년 뒤 명배우 고(故) 리처드 버튼이 출연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냉전 시대 독일이 주 무대인 이 소설은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영국 정보원이 이중간첩이 되려고 영국 첩보기관 MI6를 떠나 독일 정보당국에 취직해 벌이는 활동을 다뤘다.
영국 작가인 그레이엄 그린은 이 작품을 자신이 읽은 첩보 소설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출간된 해에 영국추리작가협회로부터 '골드 대거'(Gold Dagger) 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 상의 제정 50주년인 2005년에 '대거 오브 대거스'(Dagger of Daggers)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이밖에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1974), 'The Honourable Schoolboy'(1977), 'Smiley's People'(1979), 'The Night Manager'(1993) 등 명작들을 계속 발표했다.
1990년 영화로 만들어진 '더 러시아 하우스'(The Russia House)에는 지난 10월 타계한 숀 코너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르 카레는 영국 정보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다수의 스파이 소설을 집필했다.
그는 옥스퍼드대에서 현대언어학을 전공한 뒤 이튼 칼리지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가르치다가 국내 정보를 다루는 MI5로 이직했다.
이어 1960년에 외국 정보를 수집하는 MI6로 옮겨 당시 서독 대사관과 영사관에 근무하면서 첩보 활동을 벌였다. 대표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도 이 시기에 집필했다.
그의 본명은 '데이비드 존 무어 콘월'(David John Moore Cornwell)이지만 첩보 활동중인 그가 실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을 영국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아 존 르 카레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린 뒤 그의 작품은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했다.
'콘스턴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ener', 2001)는 케냐 주재 영국 외교관 부인의 죽음과 부패한 거대기업의 연관성을 소재로 했다. 또 'A Most Wanted Man'(2008)은 9·11 사태 후 테러와의 전쟁과 돈세탁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그는 2019년에 발표한 마지막 책인 'Agent Running in the Field'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를 표출하면서 유럽연합에서 탈퇴를 추진한 영국 정치인들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bum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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