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자장 조작해 주자성 박테리아 '펌프 효과' 유도
미세로봇 운반체보다 배양 훨씬 쉬워, 정밀의학 폭넓은 적용 기대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암 치료제는 부작용이 심하다.
과학자들이 치료제의 작용물질을 정확히 종양에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 데 매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암 치료제는 종양에서만 효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자성(走磁性) 박테리아로 혈액 흐름을 제어하는 정밀 약물 전달법을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대(ETH Zurich)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주자성 박테리아는 몸 안에서 미세 펌프(micropump)와 비슷한 효과를 내, 액체에 포함된 작용물질을 여러 방향으로 옮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는 혈액에 섞인 작용물질도 종양 조직에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재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펑크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논문으로 실렸다.
14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올라온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박테리아를 모방한 미세로봇 운반체에 약물을 탑재한 뒤 체외에서 자장(magnetic field)을 움직여 원하는 위치로 보내는 방법은 이미 개발돼 있다.
이 대학 '반응 생체의학 시스템 랩(실험실)'의 지모네 쉬를레 교수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자성 박테리아를 직접 운반체로 썼다.
45년 전 해양에서 발견된 주자성 박테리아는 바닷물에 녹아 있는 철분을 흡수하는데, 이렇게 흡수된 철분은 산화철 결정을 형성해 한 줄로 정렬한다.
주자성 박테리아는 이 산화철 줄을 나침반의 바늘처럼 이용해 지축 쪽으로 정향성을 갖고 이동한다.
연구팀이 약한 선회 자장으로 한 무리의 박테리아를 회전시키자, 미세 펌프 효과가 생겨 주변의 액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연구팀은 중첩 자장을 적용해 펌프 효과의 범위를 미세한 영역으로 제한할 수 있었다.
암 치료제 등의 작용물질을 종양 부위에만 정확히 전달하는 데 이 방법을 쓸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쉬를레 교수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 방법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걸 입증했다.
이번 연구에선 또한 기계적인 미세 펌프를 쓰지 않아도 체외 조작만으로 미세 혈관 내의 액체 혼합 등이 가능하다는 게 밝혀졌다.
쉬를레 교수는 "박테리아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생물 반응 장치에서 간단히 배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유형의 혐기성 박테리아가 암 환자의 종양에서 많이 증식한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박테리아가 체내 다른 부위보다 종양의 저산소 환경을 좋아한다는 걸 의미한다.
현대 과학은 여러 박테리아 종의 장점을 합성생물학으로 연계하는 수준까지 와 있다.
주자성 박테리아로 종양 내부의 깊숙한 곳까지 치료 작용물질을 전달하는 방법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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