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대비 캐나다 6배-미·영 4배-EU 2배 물량 '입도선매'
빈국 인구대비 20% 미만…한국·스위스 등 고소득국도 인구 하회
부국들에 '곳간 열라' 압박 가중…바이든의 미국 달라질까 주목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 일부 부자나라들이 내년 말까지 시장에 나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절반 이상을 '싹쓸이'하려고 하면서 백신 확보를 둘러싼 국가별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많은 빈국이 2021년도 많아야 인구의 20%에 대한 백신 접종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일부 부국들은 인구의 몇 배에 달하는 물량을 이미 선점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일부 나라선 차고 넘치는 백신…인구 대비 캐나다 6배-미국·영국 4배-EU 2배 백신 '입도선매'
듀크 대학, 과학분석업체 에어피니티 등이 수집한 백신 계약에 대한 NYT 분석에 따르면 이들 부국의 경우 여러 백신 후보들에 대해 '분산 투자'한 상황으로, 확보한 모든 물량이 들어온다고 가정할 때 유럽연합(EU)의 경우 인구 대비 2배, 미국과 영국은 4배 이상, 캐나다는 무려 6배 이상을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을 '입도선매'했다.
듀크 연구원인 앤드리아 테일러는 "일부 고소득 국가들이 줄 앞쪽을 선점, 싹쓸이를 해버렸다"고 말했다.
이 분석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상위소득 국가로 분류된 16곳 가운데 '인구 대비 선주문 물량 비율' 면에서 12번째에 위치했다. 캐나다와 미국, 영국, EU, 호주, 칠레, 이스라엘, 뉴질랜드, 홍콩, 일본 등 10곳이 인구 수 이상의 물량을 확보했고, 스위스와 한국, 쿠웨이트, 대만, 이탈리아, 파나마는 확보 물량이 인구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돼 있다.
미국은 가장 유망한 백신 5개에 대한 연구와 개발, 제조를 지원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면서 이들 백신업체를 대상으로 속도와 물량에 대한 압박을 가해왔다고 NYT는 전했다.
단 생산 물량 접근에 대한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는 게 지원조건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부유국들도 거래 물량을 늘릴 수 있다는 옵션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대규모 선주문 움직임에 가세하면서 다른 많은 나라가 적기에 백신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을 약화하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일부 제조업체들이 물량 목표를 하향 조정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부유국별로 조기에 많은 물량을 손에 넣기 위해 앞다퉈 나서면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NYT에 따르면 미국은 화이자에서 5억 회분을 추가로 사들이는 옵션으로 일단 1억 회분을 확보했으며, 모더나에서는 2억 회분을 확보한 데 이어 3억 회분을 추가할 예정이다. 이 밖에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존슨앤드존슨, 노바백스, 사노피-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으로부터 8억1천 회분을 선주문한 상태이다.
영국도 이들 업체 및 발네바로부터 3억5천700만 회분을 요청한 상태이며 1억5천200만 회분을 추가로 사들이는 옵션을 걸어뒀다.
EU는 이들 회사 및 독일 큐어백으로부터 13억 회분을 확보했으며 필요시 6억6천만 회분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백신 후보들마다 진전 단계가 다양한 만큼 이들 나라가 전체 물량을 언제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NYT는 전했다.
◇뒷줄로 밀린 개발도상국들은 한숨…"전국민 백신 접종 아득"
반면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상황은 심각하다.
생산 물량의 한계로 인해 많은 저소득 국가들의 경우 2024년 전까지는 자국 인구 전체에게 접종할 수 있는 충분한 백신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물론 덜 부유한 나라들 모두가 심각한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일부는 자체 제약 제조력을 지렛대 삼아 내년 시장에 나올 물량 가운데 상당한 양을 확보한 상태이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경우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 백신의 상당 물량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자국 백신 제조사 세럼 인스티튜트(SII)가 생산물량의 절반을 인도에 제공하겠다고 정부에 약속했다.
이 외에 멕시코 억만장자인 카를로스 슬림은 남미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억5천회분 계약에 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이와 관련,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생산하기로 합의된 상황이다.
'1회 접종' 백신을 개발 중인 존슨앤존슨은 저소득 국가들에 50만 접종 물량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나라를 특정하진 않았다.
여기에 세계보건기구(WHO)와 빌 게이츠가 지원하는 2개의 비영리기구가 92개 빈국에 십억 회분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에 착수한 상태이다.
이와 관련, 현재 백신 공동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성공적으로 10억 회분을 확보한다고 해도 이는 각 빈국 인구의 20%도 접종하기 부족한 분량이라고 NYT는 전했다.
◇'곳간 문 열어라' 백신 부유국들에 대한 압박 가중…바이든의 미국 달라질까
백신 확보의 국가별 빈부 양극화가 극명하게 연출되면서 부유국들에 대해 백신 물량을 '공유'하라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호주와 영국, 캐나다, EU의 경우 이미 코백스에 재정적 지원을 약속한 상태인데, 빈국들에 물량이 아예 돌아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자국 물량을 순차적으로 받으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코백스 지원에 불참하는 것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백신 국수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지만, 조 바이든 당선인 취임시 기조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부유국들이 백신 여분을 기부한다고 해도 전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내년 말까지는 필요로 하는 물량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고 NYT는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들은 2024년 전에는 충분한 백신 물량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반면 자연적 집단 면역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지면 백신 수요가 줄어들면서 2022년 후반에는 공급이 충분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어떠한 경우든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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