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새 단장에 한국 주택 정책 시사점…도심 주민들 활력 느껴져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최근 한국에서 정부가 주택 전세난 대책으로 오피스텔, 호텔 등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정책이 나온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중심 요하네스버그의 도심 변화가 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지난 15일 조벅(요하네스버그 줄임말) 도심지구인 CBD를 찾았다.
조벅 CBD는 범죄율이 높은 남아공에서도 특히 위험한 곳으로 꼽힌다.
특히 외지인이 혼자 방문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영업하며 자동차 부품 판매업소를 두 곳이나 일궈낸 김맹환 남아공한인회장의 안내로 도심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김 회장의 회사가 위치한 커미셔너가(街)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압사 은행 빌딩이 있다.
은행 현금 인출객 등을 노린 강도 사건이 잦다 보니 압사 은행에서 고용한 사설 경비원들이 주변에 깔려 있었다. 사복 경찰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지 않게 잠복근무를 한다고 한다.
조벅 CBD는 1994년 남아공 최초 흑인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후 백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현재 거의 흑인 일색이다.
일종의 도심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 사무실도 팩스 하나만 달랑 놓인 유령 사무실이 많아졌다. 주 업무는 인근 샌튼 비즈니스 지구에서 이뤄진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까지 겹쳐 공실률이 치솟는 가운데 조벅 CBD 오피스텔 가격이 절반이나 3분의 1 수준까지 급감했다고 한다.
사무실은 빈 곳이 많고 창문이 깨진 곳도 군데군데 목격됐다.
들어가 보면 사무실이 아니라 아예 재봉틀에서 5명이 작업하는 작은 봉제공장으로 쓰이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러자 오피스텔을 리노베이션해 1∼2 베드룸 주거환경으로 바꾸는 시도가 이어졌다.
실제로 곳곳에서 오피스텔을 개조해 아파트로 세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물 외관도 깔끔하게 새로 단장해 젊은 흑인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런 아파트 한 곳은 월세가 3천 랜드(약 22만6천 원)로 나왔는데 보증금은 보통 두 달 치를 내지만 입주 한 달은 공짜라고도 한다.
인근 소웨토에서 통근하면 택시비만 하루 60랜드로 한 달 교통비가 약 1천200랜드인데다가 소웨토에서도 월세를 내야 하는데, 이런 도심 아파트에 살면 훨씬 경제적이고 출퇴근 시간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김맹환 한인회장은 "서울과 일대일로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조벅의 도심 변신은 청년층 주택 수요를 일정 부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소개했다.
제피 경찰서와 기차역 인근에는 컨테이너들을 주택용으로 붙여서 만든 컬러풀한 '컨테이너 하우스'도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인구 578만명인 조벅의 도심 환경은 어떨까.
김 회장의 소형차를 이용해 둘러본 첫인상은 한마디로 '활력이 넘친다'는 것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 '눈에 띄는' 차를 타고 가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해서 '로키'로 이동했다.
범죄도 범죄려니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파동 중이라 길거리 인터뷰는 삼가기로 했다.
거리에서 백인은 가물에 콩 나듯 있고 나이지리아인 등 아프리카에서 몰려온 이주민들이 좌판을 차려 과일, 반바지, 가방, 혁대, 모자 등 온갖 잡화를 저마다 늘여놓고 있었다.
모자의 경우 인근 차이나몰에서 중국산을 도매로 떼어다가 노점에서 판다고 하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상인은 50랜드라면서도 일단 "와 보라"고 한다. 김 회장 얘기로는 흥정에 따라 10, 20랜드까지도 할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보도에 우리로 치면 조그만 연탄불 같은 것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워 파는데, 냄새가 구미를 당기고 저렴해 인기가 많다고 한다.
길거리 간이 즉석 미장원도 생겨 머리를 다듬는 모습도 보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에는 서울과 세종시처럼 도로 중앙에 버스 정류장이 들어섰다.
120, 130년 넘은 조벅의 도로는 백인 정권 때 만들어져 바둑판처럼 정비가 잘 돼 있다. 인프라의 경우 1990년대 전만 해도 한국보다 더 나았다고 한다.
일방통행이 많아 차가 몰리더라도 한번 지나가면 통행이 수월한 편이고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상대적으로 적다.
남대문과 같은 시장통 옆에는 도로에 사람 반 차 반으로 미어터지면서도 서로 흐름을 잘 타면서 차는 빠져나가고 사람은 건너간다.
거리의 사람들은 대체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단 일터 등 실내에선 잘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점심은 좀 이동해서 도심 초입의 포르투갈식 식당에서 먹었는데 거리에서 안 보이던 백인들이 주로 손님으로 와 있었다.
저 멀리 1970∼1980년대 백인들의 부의 상징이었다는 '폰티' 아파트가 보였다.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 같은 곳이었는데 1990년대부터 흑인들로 채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한 세대 동안 건물의 주인들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조벅 시내는 뭔가 낡은 듯하면서도 역동성이 꿈틀거리는 곳이었다.
김 회장과 얘기를 나누면서 의견의 일치를 본 대목은 정치만 잘 뒷받침되면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라는 것이다. 물론 치안과 교육 투자도 선결 조건일 것이다.
마침 남아공이 1995년 럭비월드컵에서 우승한 장소인 엘리스파크에 경기 근거지를 둔 21세 이하(U-21) 럭비팀 라이온스의 베스탈 부매니저는 이날 짧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더이상 흑백 인종에 기반하지 않고 선수를 선발하고 있다. 우리는 형제들로 한팀"이라고 강조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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