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동토층서 "눈만 빼곤 100% 온전하게 발굴"…털 한올까지 생생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약 5만7천 년 전 굴속에 혼자 있다가 굴이 무너지면서 생후 7주 만에 죽은 새끼 늑대가 털과 이빨 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발굴돼 미라로 세상을 다시 만나게 됐다.
이 새끼 늑대는 지난 2016년 7월 캐나다 북서부 유콘의 도슨시티 인근 금광에서 물을 분사해 얼어붙은 진흙 벽을 허물어내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영구동토층의 얼음 속에서 눈만 빼곤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견된 이 새끼 늑대를 대상으로 그간 게놈 분석과 탄소 연대측정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돼 왔으며 관련 논문이 21일 생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를 통해 발표됐다.
새끼 늑대 미라는 현지 원주민인 '트론덕 훠친'(Tr'ondek Hwech'in) 부족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져 부족 언어로 늑대를 뜻하는 '저'(Zhur)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이 부족의 동의를 얻어 연구 전시시설인 '유콘 베링기아 인터프리티브 센터'에 전시되고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미국 디모인대학 해부학 부교수 줄리 미첸 박사는 저가 "지금까지 발견된 늑대 미라 중 가장 완벽한 상태"라면서 "눈이 사라진 것을 제외하곤 100% 온전하게 발굴돼 죽을 때의 상황과 관련된 많은 질문에 답을 줬다"고 밝혔다.
우선 저와 같은 완벽한 상태의 영구동토층 미라로 발견되려면 항상 영하를 밑도는 곳에서 죽고 곧바로 묻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툰드라 지대라고 해도 부패하거나 다른 동물의 먹이가 돼 온전할 수가 없다고 한다.
또 저는 이빨 발달상태나 뼈에 대한 X선 분석을 통해 생후 6~7주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죽을 당시 굶주리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연구팀은 이런 점을 근거로 저가 모래를 파 만든 굴속에 있다가 굴이 무너져 내리면서 곧바로 죽은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또 저의 위에 남은 것을 토대로 죽기 전 먹은 음식물을 분석했는데, 빙하기 늑대들이 들소나 사향소 등 육지 동물을 잡아먹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연어와 같은 해산물을 발견했다.
암컷인 저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홍적세 북극 늑대(Canis lupus)로 현존 회색늑대와 같은 종이지만 직접적인 조상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저가 살던 시기는 탄소연대측정 등을 통해 5만6천~5만7천년 전으로 특정됐는데, 이 시기는 빙하기 중에서도 비교적 온화해 이 지역에 강이나 내가 흐를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저를 통해 많은 사실을 밝혀냈지만, 저가 왜 굴속에 혼자 있다가 변을 당했는지에 관한 의문은 풀지 못했다.
미첸 박사는 "기후변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더 많은 미라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는 과거 상황을 더 잘 파악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지구가 얼마나 더워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말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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