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상태로 출시…광고와 달리 '차세대 게임'으로 보기도 어려워
언론 리뷰 통제도 역풍 초래…'크런치' 되풀이에 내부 반발 조짐도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차세대 게임을 보여주겠다"던 폴란드 게임사 CD프로젝트레드(CDPR)의 '사이버펑크 2077'(이하 사펑)은 결국 '희대의 마케팅 사기 게임'이라는 오명을 쓰며 추락하는 분위기다.
내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작 게임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국내 게임사들이 CDPR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며 CDPR의 실책을 정리했다.
◇ 완성되지 않은 게임을 팔기 위한 과장 광고
이달 10일 출시한 사펑은 주인공 'V'가 '나이트시티'라는 가상 도시 안팎에서 악덕 기업이 벌이는 음모를 파헤치며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스토리다.
CDPR은 이 게임을 1인칭 시점 오픈월드 롤플레잉게임(RPG)으로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마치 실제 도시처럼 살아 숨 쉬는 나이트시티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혀왔다.
그런데 사펑은 출시하자마자 '기대 이하'라며 뭇매를 맞았다.
첫 번째 이유는 버그 범벅인 채로 출시해서였다. PC와 콘솔을 가리지 않고 게임이 갑자기 꺼지거나 그래픽이 깨지는 등의 버그가 빈발했다.
게다가 사펑은 마케팅과 달리 '차세대 오픈월드 RPG'도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9월 도쿄게임쇼에서 CDPR의 히로시 사카키바라 디자이너는 "사펑에서는 고층빌딩 하나에 들어가 돌아다녀 보면 역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게임이 출시되자 이용자가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은 몇 개 되지 않으며, 나이트시티에 설치된 공간·사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요소 자체가 많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펑은 출시 전 "성기 크기까지도 조정할 수 있을 정도로 극도로 자유로운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제공할 것"이라고 광고했는데, 이 역시 실제 게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마케팅 수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이머들은 "2000년대 후반에 나온 게임들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웹진 주비디오는 "사펑은 결코 차세대 게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 출시 전 리뷰 통제로 게이머들 알 권리 침해
CDPR은 의도적으로 언론과 스트리머들의 리뷰를 통제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CDPR은 초고사양 PC 리뷰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일부 게임 웹진에만 선별적으로 리뷰 코드를 제공했고, 콘솔 리뷰 코드는 출시 이후에야 배포했다.
그러면서 PC 리뷰에서도 리뷰어가 자체 녹화한 플레이 장면은 엠바고를 걸어 이용자들이 출시 전에 다양한 리뷰 영상을 보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게임 리뷰 사이트 '오픈크리틱'은 "CDPR은 PS4와 엑스박스 원에 심각한 성능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성능 문제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게임 출시일 첫날 판매에 타격을 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CDPR은 비디오 게임 환불이 일반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알았고, 대다수 웹진이 여러 플랫폼으로 리뷰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았다"며 "그들은 기만적이었고 이기적이었고 착취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오픈크리틱은 CDPR의 리뷰 통제가 개발자들 보너스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CDPR은 세계 최대 리뷰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총점 90점 이상을 받아야 개발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내부 정책을 갖고 있다.
오픈크리틱은 "CDPR은 사펑의 리뷰 점수를 극대화해 보너스를 확보하고자 할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 섣부른 상장과 '크런치'는 결국 회사를 갉아먹는다
게임인더스트리는 "CDPR은 '위처3'가 성공하자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은 바로 상장"이라고 지적했다.
CDPR은 위처 시리즈가 주목받자 2013년 바르샤바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2015년 위처3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유럽 게임사 시가총액 1위로 올라섰다. 올해 5월 시총이 약 83억6천만유로(11조2천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CDPR은 성공한 게임이 위처 단 한 개뿐이었던 탓에 사펑 관련 소식이 나올 때마다 주가가 요동쳤다. 사펑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과도하게 반영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CDPR이 과도한 마케팅으로 게이머들의 기대치를 높이고 완성도 못 한 게임을 서둘러 출시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여기 있다고 지적한다.
게임인더스트리는 "상장은 몇 사람만 부유하게 만들었다"며 "게임 출시·연기 등 중요한 결정이 이용자들에게 잘 서비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요인들에 좌우되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결국 사펑 출시 이후 CDPR의 주가는 최고점 대비 50% 가까이 폭락했다. 유럽 증권가에서는 CDPR이 과거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CDPR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사 윗선이 사펑 출시를 앞당기기 위해 크런치(신작 발표를 앞두고 야근·밤샘을 반복하는 게임업계 폐해)를 강요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CDPR은 지난해 크런치 모드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던 바 있다.
관리직이 매달 소수의 개발자를 선정해 회사 로고를 본뜬 붉은 새 모양 토큰을 나눠주고, 게임 출시 이후에 성적에 따라 이 토큰을 수당으로 환급해주는 착취적 구조의 제도도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CDPR 내부에서 개발진이 반기를 드는 조짐도 있다.
CDPR은 이달 17일 경영진이 사펑 실패에 사과하는 회의를 열었는데, 분노한 직원이 이사회에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비현실적인 마감일, 몇 달 이상 지속된 크런치 근무 등에 관한 날 선 질문이 주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스마일게이트·펄어비스 등 국내 주요 게임사들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AAA급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펑 사태는 과도한 마케팅, 크런치 폐해 등 대형 게임사가 범할 수 있는 잘못을 종합적으로 보여줬다"며 "AAA급 게임을 개발하려는 국내 게임사들은 이번 사례를 꼼꼼히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게임이 현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두루 다루겠습니다. 모바일·PC뿐 아니라 콘솔·인디 게임도 살피겠습니다. 게이머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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