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EU 회원국 일제히 접종 개시
고령층·의료진에 우선 접종…코로나19와의 전쟁종료 희망 커져
(베를린·제네바·파리=연합뉴스) 이 율 임은진 현혜란 특파원 =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영국과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 회원국에 거주하는 4억5천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와의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할 방법이라곤 마스크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점점 더 많은 세계 시민들의 손에 백신이라는 또 하나의 방패가 쥐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유럽에서 가장 심한 독일에서는 27일(현지시간) 전국 각지의 백신접종 기동팀이 양로원·요양원을 방문해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DPA통신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수도 베를린에서는 이날 오전 7시 45분 슈테글리츠의 한 요양원에 백신접종 기동팀이 도착해 101세인 게르트루트 하제씨에게 첫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을 접종했다. 요양원 앞에는 경찰이 배치됐다.
베를린에는 이날 9천750도즈의 백신이 보급됐다. 60개 백신접종 기동팀은 종일 가장 취약한 것으로 분류되는 요양원 거주자부터 백신접종을 한다. 팀당 하루 50명씩 접종해 2월 초에는 양로원·요양원을 대상으로 한 접종을 끝낼 계획이다.
양로원·요양원 직원들에 대해서도 동시에 코로나19 백신접종이 시작된다. 직원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베를린 시내 6곳의 백신접종센터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는다.
8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백신접종은 내년부터 시작된다.
앞서 전날 작센안할트주의 한 양로원에서는 101세의 에디트 크볼찰라씨를 필두로 거주자와 직원 50여명 가량이 백신을 접종받았다. 이는 독일로서는 처음이다.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는 수도권 일드프랑스 센생드니주의 병원 산하 장기 요양시설에 사는 모리세트(78) 씨가 첫 번째 백신 접종의 주인공이 됐다고 일간 르파리지앵, 프랑스앵포 방송 등이 보도했다.
모리세트 씨는 이날 오전 11시 접종을 하기 전 스스로 다짐하듯 취재진을 향해 "겁먹지 마세요. 나는 준비가 됐으니까요"라고 말했고, 접종을 마치고 나서는 환하게 웃으며 "나쁘지 않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모리세트 씨에게 백신을 접종한 간호사 사미라는 "주사를 놓는 일은 내가 매일 하는 치료이지만 오늘 내가 한 일은 모두가 이야기하는 첫 번째 백신이었다는 점에서 감동했다"고 말했다
다른 EU 회원국과 함께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백신 접종을 처음 시작한 프랑스는 이날 센생드니주의 세브랑과 코트도르주의 디종에 거주하는 노인 20여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계획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가 회복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백신이라는 바이러스와 싸울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며 "다시 한번 굳건히 버텨내야 한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도 아주 짧은 기간에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게임 체인저"라고 부르며 "우리는 오늘이 코로나19 대유행의 끝이 아니라 승리의 시작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는 과달라하라 로스올모스의 한 요양원에 거주하는 아라셀리 로사리오 이달고(96) 씨가 첫 번째 백신 접종 수혜자가 됐다고 일간 엘파이스가 전했다.
보행기에 의지한 채 걸어야 하는 아라셀리 씨가 이날 오전 9시 요양원 안에 마련된 공간에서 백신을 맞고 나서 내뱉은 첫마디는 "하느님 감사합니다"였다.
앞서 의료진은 아라셀리 씨에게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살짝 따끔하다"고 말한 뒤 "이제 다 됐다"며 "스페인에서 백신을 맞은 건 당신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아라셀리 씨는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면서 느낌이 어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주 편안하다"고 답했다.
그라나다에서 태어나 2013년부터 로스올모스에서 지내고 있는 아라셀리 씨는 해당 요양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이다.
아라셀리 씨에 이어 10년 동안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조무사 모니카 타피아스(48)가 백신을 맞았고, 그는 자신이 스페인에서 백신을 맞은 첫 번째 의료진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헌신해온 의료진이 첫 백신을 접종받았다. 백신접종은 스팔란차니 감염병 종합병원 소속 의료진 5명부터 시작됐다.
스팔란차니 병원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60대 중국인 부부를 완치한 병원이기도 하다.
이날 백신 접종을 받은 스팔란차니 감염병 종합병원 소속 바이러스 전문의 마리아 로자리아 카포비앙키는 "걱정할 필요 없다"면서 "희망과 신뢰를 갖고 접종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간호사인 클라우디아 알리베르니니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로베르토 스페란차 보건장관은 "우리가 얻은 이 도구들을 이용해 우리는 계속 몇 주 동안 저항하고 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안드레이 바비스 총리가 TV에서 생중계가 이뤄지는 가운데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을 접종받았다.
바비스 총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백신은 우리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고 말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도 아테네의 한 병원에서 백신 접종을 하고 난 뒤 "전혀 아프지 않았다"며 백신 접종을 독려했다.
한편 헝가리는 하루 전인 26일 부다페스트 내 코로나19 치료센터로 지정된 대형 병원 2곳에서 의료진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슬로바키아도 하루 당겨 백신접종을 개시했다.
EU 27개 회원국은 인구의 70%까지 접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야 집단면역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은 최전선 의료 종사자와 고령자 요양원 거주자 등을 최우선 대상으로 해서 단계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이후 일반 시민은 이르면 내년 1분기 말∼여름부터 접종을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EU 27개국에서는 12월 중순 기준으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천400만 명, 누적 사망자는 33만6천 명가량 발생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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