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서 수백㎞ 떨어진 교토 염두…일왕 손자 피난도 검토 과제로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011년 3월 후쿠시마(福島)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직후 당시 민주당 정권이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을 도쿄에서 수백㎞ 떨어진 곳으로 피난시키는 방안을 비공식 타진했다고 교도통신이 30일 보도했다.
하지만 일본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인 궁내청(宮內廳) 측이 "국민이 피난하지 않고 있는데, 있을 수 없다"고 반응해 실행되지 않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정권은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의 의뢰를 받아 아키히토가 교토(京都) 혹은 교토보다 서쪽으로 피난하는 방안에 관한 본인의 의향을 하케타 신고(羽毛田信吾) 당시 궁내청 장관에게 비밀리에 물었다고 당시 정권 간부를 지낸 복수의 취재원이 밝혔다.
당시 궁내청 관계자는 "거절한 기억이 있다. 정부라기보다는 정치가 개인의 이야기로써 들었다"며 아키히토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달했는지에 관해서는 "사후(事後)에 전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반응했다.
피난 목적지로는 교토고쇼(御所)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고 통신은 전했다.
교토고쇼는 수도를 도쿄로 옮기기 전인 1331∼1869년 일왕의 거주 및 집무에 사용된 시설이다. 현재는 도쿄에 있는 고쿄(皇居)가 대신하고 있다.
일왕 피난 구상에 관해 간 전 총리는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쪽에서 (당시) 폐하(아키히토)에게 타진하거나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왕위 계승 1순위인 후미히토(文仁) 왕세제의 장남 히사히토(悠仁)를 교토로 피난시키는 구상도 '방사성 물질이 수도권에 퍼진 경우 검토 과제'로 일본총리관저에서 부상했으나 결국에는 보류됐다고 교도통신은 덧붙였다.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동일본대지진)으로 쓰나미(지진 해일)가 발생하면서 후쿠시마 제1원전은 침수에 의한 전력 차단을 겪었고 냉각 기능에 문제가 생긴 가운데 원자로 1·3·4호기가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현재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대표인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당시 관방장관은 대지진 5일 후인 3월 1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전에서) 20∼30㎞ 지역에서 옥외 활동을 하더라도 즉시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원전 반경 80㎞ 이내에 있는 자국민에게 피난을 촉구했다.
당시 아키히토가 도쿄를 탈출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으나 가와시마 유타카(川島裕) 시종장(侍從長, 일왕을 보좌하는 '시종'직 중 최고위급)은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2011년 5월호에 실은 수기에서 "폐하가 도쿄의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도쿄에서 나가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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