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부결' 상원, 격론 끝 합법화 법안 가결
가톨릭 반대 딛고 이뤄진 결정에 여성단체 등 환호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국이기도 한 가톨릭 국가 남미 아르헨티나가 임신 초기 낙태를 허용하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상원은 30일(현지시간) 12시간이 넘는 마라톤 토론 끝에 임신 1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을 찬성 38표 대 반대 29표로 가결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발의한 이 법안은 지난 11일 이미 하원을 통과한 바 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가톨릭 전통이 강한 중남미 지역에서 낙태가 허용되는 가장 큰 국가가 됐다. 지금까지 중남미에선 쿠바, 우루과이, 가이아나 정도만이 임신 초기 낙태를 허용해왔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상원 표결 이후 트위터에 "안전하고 합법적이며 자유로운 낙태가 이제 합법"이라며 "오늘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확장하고 공중보건을 보장하는 더 나은 사회가 되었다"고 환영했다.
중남미 다른 대부분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에서도 지금까진 낙태가 엄격히 금지됐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인 경우나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낙태가 허용되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의료기관에서 낙태 시술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이 위험한 음성 낙태 시술에 의존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에 따르면 해마다 37만∼52만 건의 불법 낙태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1983년 이후 3천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여성단체 등을 중심으로 낙태 합법화 요구가 끊이지 않았으나 보수 가톨릭계의 강한 반발 속에서 여러 차례의 합법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2018년에도 임신 초기 낙태 합법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해 주목을 받았지만 상원에서 부결됐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좌파 성향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취임 후 낙태 합법화 재추진을 약속했고, 지난달 약속대로 직접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 여당이 낙태 합법화를 주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시 가톨릭 신자인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발의 당시 "낙태 찬성 또는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딜레마는 낙태 시술이 음성적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아니면 아르헨티나의 의료체계 내에서 이뤄져야 하는지다"라고 말했다.
전날 오후부터 상원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의회 앞에선 초록색 깃발을 든 낙태 합법화 지지 시위대와 푸른색 깃발을 든 반대 시위대가 밤샘 시위를 벌였다.
새벽 4시께 표결이 끝난 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부통령이 결과를 발표하자 수천 명의 합법화 지지자들은 얼싸안고 환호했다.
대통령을 도와 초안을 작성한 빌마 이바라는 기자들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오랜 시간 투쟁했고 많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다시는 음성 낙태 시술 중 죽는 여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반면 가톨릭계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실망감을 표시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은 전날 상원 토론 개시 전에 트위터에 "하느님의 아들은 모든 버려진 이들은 신의 자녀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기 위해서 버려진 채 태어났다"는 글을 올렸다. 낙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낙태 합법화 반대를 독려하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중남미의 낙태 합법화가 도미노처럼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이 지역에선 쿠바, 우루과이, 가이아나 외에 멕시코 일부 지역(멕시코시티, 오악사카주)과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프랑스령 기아나 정도에서만 임신 초기 합법적 낙태가 가능하다.
나머지 국가들은 대부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고,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을 비롯해 어떤 경우에도 낙태가 불법이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후안 파피에르는 "아르헨티나처럼 큰 가톨릭국가에서 낙태 합법화 법안을 채택한 것은 중남미 여권 운동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며 "저항이 있긴 하겠지만 2010년 아르헨티나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때처럼 도미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