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A 등 '올해의 게임' 최다 수상…섬세한 연출·퀴어 서사 돋보여
실험적 전개 탓에 극렬 반발도…너티독 '크런치' 문제도 재부상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2020년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GOTY(고티))의 영예는 미국 게임사 너티독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이하 라오어2)에 돌아가는 분위기다.
영미권 최고 권위의 게임 시상식 '더 게임 어워드'(TGA)와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GJA) 등 상당수 시상식·웹진이 라오어2를 지난해 고티로 선정했다.
희대의 '문제작'답게 고티 수상에도 평이 엇갈리고 있다.
예술 영화에 버금가는 섬세한 연출이 찬사를 받고 있지만, 게임 안팎의 문제를 지적하는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라오어 시리즈는 동충하초 변종 균이 퍼져 인류 대다수가 죽거나 감염된 이후의 세상을 그린다.
감염 사태 속에서 딸을 잃은 뒤 냉혈한 밀수꾼으로 살던 중년 남성 조엘과 감염병 창궐 이후 태어나 사회성이 다소 부족한 외강내유 소녀 엘리가 유사 부녀 관계를 형성하며 인간성을 찾는 내용이다.
라오어2에서는 새로운 등장인물이 여럿 나오면서 스토리가 1편보다 산만해진다.
그러나 그 속에서 엘리가 레즈비언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만은 유독 빛난다.
너티독이 엘리 서사를 얼마나 세심하게 짰는지는 엘리가 잭슨 마을에서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드러난다.
플레이어는 마을 파티에서 디나가 엘리에게 기습 키스한 다음 날 아침 엘리를 조작해서 마을을 걷게 된다.
이때 길거리와 술집의 인파는 엘리를 힐끗거리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흘겨본다.
엘리는 그전에도 캣이라는 친구와 가까이 지냈으나 커밍아웃한 적은 없었다.
디나의 키스로 아우팅(성적 지향이 타인에 의해 공개되는 것)을 당한 것이다.
이성애자 게이머는 엘리를 조작하면서 성 소수자가 평소 어떤 사회적 시선을 견뎌야 하는지 잠깐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엘리와 디나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도 섬세하게 묘사된다.
1편에서 조엘이 엘리의 유년기를 보살피면서 아버지 노릇을 했다면, 2편에서 디나는 사회성이 부족한 엘리를 적극적으로 이끌면서 강인하게 만든다.
엘리는 디나와 함께 복수의 여정을 떠난 첫날 "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 같아."라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디나는 "얘 좀 봐.(look at you.)"라며 감정표현을 하기 시작한 엘리를 놀린다. 이후 엘리는 일기장에 "디나를 많이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적는다.
디나가 엘리의 정신적 성숙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가늠하게 하는 연출이다.
엘리가 아버지나 다름없는 조엘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하기 어려워하는 장면들도 플레이어의 마음에 먹먹함을 더한다.
회상 장면 중 하나에서 조엘은 엘리에게 "너 제시(남성 친구) 좋아하는 거 같다, 내가 이런 쪽에는 감이 좋다."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자 엘리는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라며 나지막한 혼잣말을 삼킨다.
조엘은 엘리가 디나와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엘리의 성 정체성을 짐작하게 된다.
조엘이 이를 언급하며 "너와 만나는 건 그 아이에게 행운이야."라고 말하자, 엘리는 "아저씨는 정말 나쁜 놈이에요."라며 겸연쩍은 듯 화를 낸다.
이 장면은 조엘이 얼마나 엘리를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겼는지, 엘리는 그런 조엘 앞에서 얼마나 철없이 굴면서도 솔직하려고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다음 이어지는 라오어2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엘이 남기고 떠난 기타를 바라보는 엘리의 시선이 더없이 무겁고 쓸쓸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런 연출 때문이다.
이 게임은 과감한 스토리 전개 탓에 일부 게이머 커뮤니티로부터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라오어2 스토리는 '복수의 허무함', '악(惡)의 상대성', '실존과 윤리적 딜레마 사이의 고뇌' 등 여러 갈래로 해석할 여지를 품고 있다.
이를 위해 너티독은 플레이어가 악당 애비를 조작해 엘리를 공격하도록 하는 등 실험적인 전개를 선보였다.
일부 게이머와 스트리머들은 게임 CD를 부수거나 게임에 참여한 제작진에게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는 등 과격 행동을 보였다.
주요 인물이 성 소수자이거나 근육질의 여성이라는 점을 힐난하는 집단도 있었다.
발매 직후 극에 달했던 혐오 발언은 최근 라오어2가 고티를 수상하면서 다시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너티독이 게임업계에서 손꼽는 수준의 '크런치'(신작 발표를 앞두고 야근·밤샘을 반복하는 게임업계 폐해)를 자행하는 기업이라는 비판도 고티 수상으로 다시 거세지고 있다.
북미 웹진 '코타쿠'의 필진 이안 워커는 라오어2가 TGA에서 7관왕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디렉션 상'(Best Direction)까지 받은 점을 비판하면서 "너티독은 노동자들에게 믿을 수 없는 수준의 크런치를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워커는 "게임 디렉터에게는 업무량을 잘 관리하면서 목표를 달성할 책임이 있다"며 "TGA와 자문위원회의 수상작 선정에 실망했다. 게임업계는 크런치 근절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브스의 선임기고가 에릭 케인도 "몇 달, 심지어는 몇 년에 이르는 크런치를 요구하고 있다면 이는 리더십의 실패이자 게임 개발 방향의 실패"라며 "그 실패는 권위 있는 상으로 보상돼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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