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영상 함께 출연 약 30초 발언…교도 "전례 없는 일"
하버드대 졸업·외무성 근무 이력…활동폭 넓힐지 주목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부인 마사코(雅子) 왕비가 남편과 나란히 앉아 대국민 발언을 하는 모습이 1일 공개됐다.
일본 왕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을 받아온 일본에서 어떤 울림을 낳을지 주목된다.
일본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인 궁내청(宮內廳)이 이날 공개한 왕실 신년 영상 메시지에는 마사코 왕비가 나루히토 일왕 곁에 나란히 앉아서 출연했다.
6분 45초 분량의 동영상 대부분이 나루히토 일왕이 말하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으나 마사코 왕비의 발언도 32초가량 담겼다.
동영상 첫머리에서 나루히토 일왕이 "여러분 신년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한 직후 마사코 왕비가 바로 이어 "축하합니다"라고 말한다.
다시 나루히토 일왕의 발언이 길게 이어진 후 마사코 왕비가 영상 말미에 약 30초 동안 "이번 1년(2020년) 많은 분이 정말 힘드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올해가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평온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또 이번 겨울 일찍부터 각지에서 엄혹한 추위나 큰 눈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부디 몸조심해서 지내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분량도 적고 자국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내용이라서 내용 자체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일본 왕실에 이어진 일종의 금기를 깬 상징적인 사건이다.
교도통신은 왕비가 일왕과 동석해 (공개적인) 발언을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영상 메시지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당시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처음 발표했고, 2016년 8월 아키히토가 퇴위 의향을 표명한 것이 두 번째였다.
두 번 모두 미치코(美智子) 당시 왕비가 동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키히토가 혼자 카메라 앞에서 메시지를 읽었다.
아키히토가 재위 중 30년간 신년 메시지를 독차지했고 미치코의 몫은 없었다.
나루히토도 즉위 후 첫 신년인 작년 1월 1일에는 혼자서 메시지를 발표하는 등 부친의 방식을 답습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통상 일반인들이 일왕 거주지 '고쿄'(皇居)를 방문한 가운데 열리는 신년 축하 행사를 올해는 영상 메시지로 대신하기로 한 것을 계기로 부부가 나란히 메시지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마사코가 대물림된 소극적인 역할을 벗어나 왕실 구성원으로서 존재감을 부각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앞서 일본 주간지 '뉴스포스트세븐'은 마사코가 영상 메시지에 나루히토와 함께 출연할 가능성을 거론하며 미치코가 왕비로서 구축한 활동 양식인 '헤이세이류'(平成流)가 왕실 사상 첫 시도에 장벽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미치코가 아키히토의 영상 메시지에 동석하지 않은 것이 "한걸음 뒤로 물러나 떠받치는 헤이세이류인지도 모른다"고 풀이했다.
이어 마사코가 지난달 생일을 계기로 발표한 메시지에서 "앞으로도 폐하(일왕) 책무의 무게를 늘 염두에 두고 폐하 곁에서 지탱할 수 있도록, 황후(일왕의 부인)로서 책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건강이 한층 회복하도록 노력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힌 데 주목, "뒤가 아니라 곁에서" 나란히 지탱하고 싶다는 마음이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마사코의 결혼 전 이력도 주목된다.
그는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장래가 촉망받는 외무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나루히토의 결혼 상대자로 발표돼 세간을 놀라게 한 인물이다.
외교관 출신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에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마사코가 외부와의 자유로운 접촉이 차단된 왕실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우려가 있었고 실제로 결혼 후 적응하는 과정에서 꽤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궁내청은 마사코가 적응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2004년 발표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상태가 차츰 호전하는 상황이다.
아키히토는 재위 중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할 때 종이로 된 원고를 들고 읽었으나, 이번에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는 종이 대신 원고를 비춰주는 장비인 프롬프터를 이용해 정면을 응시하고 발언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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