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여도로 배분?'…코로나 백신, 이탈리아 남북갈등 재점화

입력 2021-01-20 22:31  

'경제 기여도로 배분?'…코로나 백신, 이탈리아 남북갈등 재점화
롬바르디아 보건 책임자 발언 논란…'잘사는 주민 목숨만 소중하냐' 비판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에서 지역별 경제 기여도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배분하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인다.
20일(현지시간) 일간 '일 파토 쿼티디나오' 등에 따르면 이달 초 북부 롬바르디아주 부지사 및 보건 책임자로 임명된 레티치아 모라티는 최근 내부 회의에서 중앙정부에서 각 지역으로 백신을 배분하는 4가지 기준으로 피해 정도, 인구 밀집도, 이동성, 국내총생산(GDP) 기여도 등을 거론했다.
모라티는 회의에서 "지역별로 백신을 배분할 때 이러한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고 중앙정부에 제안했다"면서 "당국자도 일부 기준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백신 배분 계획은 이 기준에 따라 수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GDP를 기준으로 한 백신 배분에 대해 현지 시민사회 등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론이 비등하다.
이탈리아는 상공업이 발달한 중·북부와 낙농업에 치우친 남부 지역 간 경제력 격차가 크다.
특히 금융 중심지 밀라노가 주도(州都)인 롬바르디아주는 경제 규모와 주민 소득 수준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결국 그 이면에는 롬바르디아가 코로나19 피해도 크고 경제 규모도 크니 백신을 먼저 충분히 공급받아야 한다는 의도가 깔린 셈이다.
밀라노 시장을 지내기도 한 모라티는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서둘러 부인했다. 하지만 이후 회의 녹취록이 공개되며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모라티의 발언으로 오랫동안 내재한 남북 지역 갈등도 재점화한 모양새다. 남부에서는 '잘사는 북부지역 주민의 목숨만 소중하냐'는 비아냥 섞인 지적도 나온다.
항구도시 나폴리를 낀 남부 캄파니아주의 빈첸초 데 루카 주지사는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경제적 데이터에 종속시킬 수 있다는 그 발상 자체가 믿기 어렵다"며 "야만 주의 시대를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간 것 같다"고 꼬집었다.
루이지 데 마지스트리스 나폴리 시장도 "현재와 같은 비상시국에 국민적 단합과 응집력을 해치는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정부는 모라티가 제안한 백신 배분 기준에 동의한 사실이 없다면서 지역별로 백신의 공평한 배분을 약속했다.
프란체스코 보치아 지방정책 장관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GDP를 백신 배분 기준으로 삼는 것은 비록 경제 손실을 고려한 것이라 하더라도 반문명적이며 인간의 보편적 권리 원칙에도 어긋난다"면서 "백신은 모든 이탈리아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lu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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