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작품세계 "동양사상과 전쟁 트라우마 영향받아…세계적 스타 예술가"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 거장 김창열 화백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NYT는 지난 15일자(현지시간) 인터넷판, 20일자 지면 기사를 통해 고인의 별세 소식과 함께 그의 삶과 생전 작품세계를 다뤘다.
NYT는 고인에 대해 "의미가 담겨 볼록해진(Swollen With Meaning) 물방울을 그린" 화가로 표현하며 "동양 철학과 전쟁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은 영롱한 물방울 그림들을 창작해내는데 반세기 동안 헌신해왔다"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스타 예술가(art star)였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고인의 물방울 그림에 관해 "세심한 주의가 기울여진 김 화백의 물방울들은 수분의 기운을 머금은 채 캔버스 위에 기적적으로 앉아있거나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빛나면서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생생하게 존재하면서도 항상 사라질 것 같은 찰나에 있다"며 "이 그림들이 김 화백을 당대 가장 유명한 한국 화가로 만들어줬다"고 평가했다.
NYT는 고인이 선종과 도교 사상에 조예가 깊었다면서 물방울을 그리는 작업이 "모든 것을 물방울로 용해하고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라며 "분노도 공포도 '허'(虛)로 돌릴 때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생전 발언을 전했다.
신문은 묘한 매력을 풍기는 김 화백의 물방울이 순수함과 깨끗함을 뜻하지만, 물방울을 그리는 과정은 그 상징적 무게감 이상으로 그에게 중요했다면서 "나는 셀 수 없이 물방울을 그리면서 끔찍한 기억을 용해하고 지워냈다"는 그의 과거 연합뉴스 인터뷰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신문은 고인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를 전하며 대학 은사였던 한국 현대미술 거장 김환기(1913~1974),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했던 비디오 아트 선구자 백남준(1932~2006)과의 인연 등도 되짚었다.
고인은 92세를 일기로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실제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영롱한 물방울을 그린 작품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한국 현대미술에 큰 획을 그었다.
일제 강점기에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이 벌어지면서 학업을 중단, 그 이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세계 무대로 눈을 돌렸으며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함축한 물방울 회화로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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