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50도 야쿠츠크 등 시베리아·극동서도"…2018년 시위 이후 최대 규모
현지 인권단체 "전국서 2천명 이상 체포"…나발니 부인도 한때 연행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독일서 독극물 중독 치료를 받고 귀국한 뒤 구금된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는 지지자들의 시위가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졌다.
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을 이유로 모든 지역의 집회를 불허하고 참가자들은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나발니 지지자들은 시위를 강행했다.
인테르팍스 통신과 반정부 성향 신문 '노바야 가제타' 등은 이날 나발니를 지지하는 비허가 시위가 수도 모스크바와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베리아·극동 주요 도시 등 전국 60여 개 도시에서 열렸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에선 시위 예정 시간인 이날 오후 2시 이전부터 시내 푸슈킨 광장에 나발니 지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광장이 시위대로 가득 찼다.
내무부(경찰)는 참가자들이 약 4천 명이라고 밝혔으나, 노바야 가제타 등 일부 언론은 최소 1만 5천 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참가자들은 '러시아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나는 두렵지 않다', '무법에 반대한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나발니를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확성기로 코로나19 전파 위험으로 집회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계속해 경고했으나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해산 조짐이 없자 경찰과 내무군은 무력으로 광장에서 시위대를 몰아내기 시작했으며 저항하는 참가자들에 곤봉을 휘두르며 체포해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모스크바에서만 600명 이상의 시위 참가자들을 연행했다고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현지 비정부기구(NGO) 'OVD-인포'가 전했다.
나발니의 부인 율리야도 시위 현장에서 체포돼 연행됐다가 이후 풀려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세나트 광장'에서도 약 5천 명이 참여한 시위가 벌어졌으며 일부 참가자들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발니 지지 시위는 이날 앞서 극동 도시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트스키, 마가단, 유즈노사할린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야쿠츠크 등에서 먼저 시작됐다.
나발니 지지 단체들은 11시간대에 나뉘어 있는 러시아 전역에서 지역별 현지시간 23일 오후부터 시위를 벌인다고 예고했었다. 이에 맞춰 시간대가 빠른 극동부터 먼저 시위가 시작됐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선 약 3천 명이 거리 행진 시위를 벌였고 일부 참가자가 체포됐다.
기온이 섭씨 영하 50도까지 떨어진 야쿠츠크에서도 약 300명이 시내 광장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은 일부 시위대를 체포했다.
뒤이어 울란우데, 노보시비르스크 등의 시베리아 도시와 북부 무르만스크, 남부 사마라 등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OVD-인포'는 이날 러시아 전역에서 2천 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이날 시위는 지난 2018년 전국적으로 벌어진 연금법 개정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로 평가됐다.
나발니 측은 다음 주 주말인 30~31일 또다시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이 나발니 지지자들의 시위를 조장했다며 비난했다.
외무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는 미국 대사관이 전날 러시아 도시들의 상세한 시위 루트를 공개한 것을 비판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외무부는 또 자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미국은 자국 문제에 집중하고 다른 나라 내정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8월 독극물 중독 증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나발니는 독일 베를린에서 치료를 받고 회복한 뒤 17일 귀국했지만, 공항에서 당국에 곧바로 체포됐다.
모스크바 인근 힘키 법원은 18일 나발니에 대한 30일간의 구속을 허가했으며, 나발니는 이후 모스크바 시내 구치소로 이송돼 수감됐다.
러시아 교정 당국인 연방형집행국은 나발니가 지난 2014년 사기 사건 연루 유죄 판결과 관련한 집행유예 의무를 지키지 않아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고 체포 이유를 설명했다.
집행국은 나발니의 집행유예 의무 위반을 근거로 모스크바 시모노프 구역 법원에 집행유예 판결 취소 및 실형 전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재판은 오는 29일로 예정돼 있다.
나발니 측은 자국 정보당국이 독극물 사건을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러시아 정부는 이를 반박하며 나발니의 중독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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