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 상원 통과
저명한 정치학자 뒤아멜의 의붓아들 성폭행 의혹 폭로 여파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이 해시태그를 쓰려고 계정을 만들었어요. 저는 4∼9살 사이 사촌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힘들지만 모든 피해자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프랑스에서 명망이 높았던 정치학자 올리비에 뒤아멜(70)이 30여 년 전 10대 의붓아들 여러 차례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프랑스 사회 전반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미투엥세스트' 해시태그를 단 채 가족, 친족간 성폭력 피해를 증언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고, 이에 대통령까지 나서 처벌 강화를 약속했다.
한국어로 근친상간을 뜻하는 '엥세스트'는 프랑스에서 친자식뿐만 아니라 피가 섞이지 않은 의붓자식을 포함해 가족, 친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성적 학대를 지칭하는 단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영상에서 모든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가족, 친족간 성적 학대 피해 여부를 조사하고 예방 교육을 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근친상간, 성폭행을 당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처벌하고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 친족간 성폭행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모든 이들을 향해 "우리는 여기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며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다시는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 누구도 다시는 이러한 경험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몇 년이 지났어도, 몇십 년이 지났어도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고 수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상원은 지난 21일 13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는 행위 자체를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하원으로 넘겼다.
이를 어길시 최고 징역 10년형과 벌금 15만유로(약 2억원)에 처할 수 있고, 공소시효를 피해자가 18세가 된 이후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고 프랑스24 방송이 전했다.
아울러 가족, 친족 사이에서 벌어진 아동 성폭행에 대해서는 부과하는 형량과 벌금을 늘릴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프랑스에서는 현행법상 성인과 15세 이하 미성년자 사이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지만, 미성년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점을 증명하면 다른 성폭행 범죄보다 형량이 낮아진다.
사회적으로 쉬쉬해왔던 근친상간 처벌논의에 불씨를 댕긴 사람은 뒤아멜이 과거 의붓아들을 성폭행했다고 폭로한 의붓딸 카미유 쿠슈네르(45)였다.
쿠슈네르는 이달 출간한 책에서 뒤아멜이 자신의 쌍둥이 형제를 여러 차례 강간했으며 가족뿐만 아니라 뒤아멜과 어울린 많은 정계 인사들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쿠슈네르는 국경없는 의사회(MSF)를 공동 설립하고 보건부, 외교부 장관 등을 지낸 베르나르 쿠슈네르(81)의 친딸이다.
쿠슈네르의 폭로로 뒤아멜은 프랑스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감독하는 국립정치학연구재단(FNSP)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각종 TV,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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