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상황 실시간 파악·마이넘버 정착 '일석이조' 노려
카드 보급률 24% 불과…당국자 "어떻게 쓰려는지 모르겠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일본판 주민등록번호인 '마이 넘버'를 활용하려고 하고 있으나 벌써부터 난항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 정보 유출 우려 등으로 외면받은 마이 넘버 제도를 정착시키고 백신 접종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극복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27일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접종 업무를 총괄하는 각료인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 담당상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도입할 새로운 시스템에 관해 "정부가 (개인) 정보를 다루지 않는다. 각 지자체가 확실히 관리한다"고 전날 기자회견에서 설명했다.
그는 접종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접종자 수를 비롯한 전체 상황만 파악할 것이라는 뜻을 표명했다.
히라이 다쿠야(平井卓也)디지털개혁 담당상이 코로나19 접종 기록을 마이넘버로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이달 19일 표명한 후 당국자들 사이에 이런저런 혼란이 확산하자 고노 담당상이 우려를 불식하고자 나선 셈이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의료사업이며 3주 간격으로 두 차례 접종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적시에 연락을 하는 등 순발력 있게 움직여야 하는 데 통상 활용하는 장부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마이 넘버와 연계된 시스템을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계기로 마이 넘버가 일반화된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행정의 디지털화의 장애물 중 하나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은 2016년부터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증 역할을 하는 마이 넘버 카드 발급을 시작했으나 발급률은 올해 1월 1일 기준 전체 인구의 24.2%에 그쳤다.
하지만 일석이조(一石二鳥) 구상이 잘 진행될지는 불명확하다.
당국자들은 마이 넘버 활용 구상에 대해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전국 모든 지자체에 공급될 백신 물류 시스템 제작을 담당하는 후생노동성은 마이 넘버를 활용해 실시간 관리하는 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며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사용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후생노동성 담당자)는 반응이 나온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은 전했다.
애초 고노 담당상은 백신 접종권을 종이가 아닌 디지털 방식으로 발행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예방접종 대장 시스템까지 건드리면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에 그냥 두기로 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백신 접종과 마이 넘버를 연계하는 방식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는 예방접종 전반을 2017년 11월부터 마이 넘버를 사용해 지자체 사이에서 공유하고 있으나 이런 방식을 실시하는 지자체가 있고, 실시하지 않는 지자체도 있다.
이에 대해 후생노동성 당국자는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반응하는 등 개인식별번호와 백신을 연계하는 것은 일반화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이 넘버 카드 보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백신과 연계하는 구상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 정부는 작년에 모든 주민에게 1인당 10만엔(약 106만원)의 지원금을 주는 사업을 추진할 때 마이 넘버를 이용하면 우편이 아닌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게 했으나 마이 넘버 카드를 발급받으려는 민원인으로 구청 창구가 북새통을 이루는 등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기초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주민에게 백신 쿠폰을 우편으로 발송하고 백신을 접종하는 주민에 관한 정보나 쿠폰 번호 등을 마이 넘버로 등록·관리한다는 구상이다.
일련의 절차가 전부 디지털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서 여전히 대규모 수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혼란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