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렐라 대통령, 드라기 전 ECB 총재 호출…내각 구성권 부여할 듯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연립정부 붕괴에 따른 이탈리아 정국 위기가 3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기존 연립정부의 재결합 노력이 끝내 실패했다.
정국 위기 해소를 책임진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명망 높은 인사를 새 총리로 지명해 내각을 꾸리겠다고 밝히면서 마리오 드라기(74)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호출했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기존 연정구성 정당인 반체제정당 오성운동(M5S)과 중도좌파 성향 민주당(PD), 중도 정당 '생동하는 이탈리아'(IV) 등 3당은 시한인 2일 저녁까지 재결합을 위한 협상을 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 등 주요 정책 사안과 내각 장관직 배분 등에서 견해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타렐라 대통령으로부터 연정 내 중재 권한을 부여받은 오성운동 소속 로베르토 피코 하원의장은 협상 결렬 직후 대통령에게 기존 연정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실패했다고 보고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사흘간의 정당별 연정 구성 협의를 마무리한 지난달 29일 '기존 연정이 다시 뭉칠 여지가 있다'며 피코 의장에게 나흘간 시간을 주며 이를 타진해보라는 임무를 맡긴 바 있다.
기존 연정이 재결합에 실패하면서 주세페 콘테 총리의 행정수반 역할도 2년 6개월 만에 막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지난달 26일 총리직에서 사퇴한 뒤 연정 구성 협의 상황을 지켜봐 왔다.
원내 1당인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총리직에 복귀하겠다는 의지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타렐라 대통령은 현 정치권의 연정 구성 능력을 더는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피코 의장의 보고를 받은 뒤 대국민 담화를 통해 현재의 보건·사회·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하루빨리 완전히 기능하는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면서 중립적 거국내각 구성을 시사했다.
그 직후 마타렐라 대통령이 드라기 전 ECB 총재를 호출했다는 대통령실 발표가 이어졌다. 사실상 드라기 전 총재에게 내각 구성 권한을 맡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3일 낮 12시 집무실이자 관저인 로마 퀴리날레궁에서 드라기 전 총리를 면담할 예정이다.
경제학자 출신인 드라기 전 총재는 2011년부터 8년간 유럽연합(EU)의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ECB 사령탑을 지내고서 2019년 10월 퇴임했다. 2012년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붕괴 위기를 방어하며 '슈퍼 마리오'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연정 위기가 불거진 이후 거국내각 구성 시 유력한 총리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지난달 13일 연정 이탈을 선언하며 이번 정국 위기를 촉발한 중도 정당 '생동하는 이탈리아'가 물밑에서 그를 총리 후보로 밀었다는 설도 있다.
드라기 전 총재에게 내각 구성권이 부여되면 코로나19 및 경제 위기 대응에 초점을 맞춘 실무형 내각을 만들려는 노력이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엘리트 경제 관료 출신에 거부감이 큰 오성운동이 '드라기 내각'에 반대할 가능성도 있어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드라기 전 총재마저 정부 구성에 실패할 경우 남은 선택지는 조기 총선밖에 없다. 현재의 여론 구도상 극우 정당 동맹(Lega)이 이끄는 우파연합의 압승이 예상된다. 현 의회 임기는 2023년까지로 약 2년이 더 남아 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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