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남남' 영국-EU,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백신 신경전

입력 2021-02-04 05:30  

'이제는 남남' 영국-EU,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백신 신경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65세 이상 접종 여부 등 두고 이견
프랑스 "영국, 막대한 위험 감수"…백신 정책 비난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유럽연합(EU)과 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두고 벌여온 신경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모양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공급 물량 축소에서 시작된 양측의 마찰은 백신 정책 비난으로까지 확산했다.
EU 내부 여론을 주도하는 프랑스의 클레망 본 외교부 유럽담당 국무장관은 3일(현지시간) 영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주로 의존하며 막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LCI 방송과 인터뷰에서 영국이 프랑스 등 여러 국가들과 달리 65세 이상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막지 않고 있다며 영국이 "빨리 가고는 있지만 덜 조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취재진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두고 "65세 이상인 사람에게는 무효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는 다소 거친 평가를 내놨었다.



앞서 유럽의약품청(EMA)은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을 권고했지만, 독일, 스웨덴, 프랑스, 벨기에 등 일부 회원국은 65세 미만에만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나이에 제한을 두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권한 나라들은 초기 임상시험에 참가한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이 10% 미만이라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영국은 반발하고 있다.
맷 행콕 보건부 장관은 BBC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과학은 매우 명확하다"며 아직 동료 검증을 거치지 않은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의 논문을 근거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매우 잘 작동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임상시험을 이끈 앤드루 폴러드 옥스퍼드대 교수도 고령층에서의 면역 효과는 젊은 성인층과 유사하다며 "자료가 다소 적어 고령층이 누릴 수 있는 예방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지 효능이 없는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영국과 EU가 추진하는 코로나19 백신 정책은 그간 함께해온 시간이 무색하게도 출발점부터 달랐다. EU를 떠나면서 몸이 가벼워진 영국은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내놓은 코로나19 백신을 지난해 12월 2일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승인, 8일부터 접종을 시작했다.
이와 달리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1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사용을 승인했고, EU 회원국들은 각자 검토를 거쳐 이르면 같은 달 27일부터 접종에 들어갔다.



영국과 속도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두고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전날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 평가에 있어서만큼은 절충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유럽의 출발은 늦었지만, 그것은 옳은 결정이었다"고 EU의 판단을 두둔하며 "백신은 건강한 신체에 생물 활성 물질을 주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량 백신 접종에는 엄청난 책임이 뒤따른다"고 강조했다.
앞서 EU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애초 약속만큼 백신 물량을 EU에 공급할 수 없다고 통보하자, 유럽에서 생산하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영국 수출을 차단할 수 있다고까지 으름장을 놓으면서 갈등에 불이 붙었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은 EU는 결국 백신 수출 금지 계획을 모두 철회했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싸고 영국과 EU가 보여온 마찰 이면에서는 영국의 EU 탈퇴 이후 양측이 앞으로 걸어갈 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읽힌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아난드 메넌 유럽정치 및 외교학 교수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보낸 기고문에서 영국과 EU가 백신을 둘러싸고 보여준 갈등은 한번 지나가고 끝날 국면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un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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