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증원 문제 언급하며 여성 차별 발언…국내외 분노 확산
모리 "사임 요구하는 목소리 강해지면 그만둬야 할 수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김호준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성사되더라도 관중 제한 등에 따른 '반쪽 대회' 가능성이 커진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에 악재가 더해졌다.
이 대회를 이끄는 모리 요시로(森喜朗·83)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일본 명칭은 회장)의 여성 차별 발언이 돌연 불거지면서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일본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모리 위원장은 3일 오후 열린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임시 평의원회에서 여성 이사 증원 문제를 언급하면서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고 발언했다.
온라인 참가자를 포함해 51명이 함께한 이 회의에선 JOC 여성 이사 비율을 40% 이상으로 하는 목표가 제시됐다.
현재 JOC 이사는 25명이고, 이 중 20%인 5명이 여성이다.
모리 위원장은 언론에도 공개된 이 회의가 끝날 무렵의 인사말을 통해 자신이 회장과 명예회장을 맡았던 일본럭비협회에서 여성 이사가 늘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면서 "종전보다 (회의할 때 ) 배(倍)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성은 경쟁의식이 강하다. 누군가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하면 자신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모두가 발언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여성 이사를 늘리게 되면 발언 시간을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을 경우 회의가 좀처럼 끝나지 않아 곤란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소개했다.
모리 위원장이 문제 발언을 할 당시 회의장에선 웃음소리가 나오는 등 농담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국내외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인터넷 공간에서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의견이 잇따르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
도쿄신문은 "전 세계 선수들을 초청해 여는 스포츠 제전을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 발언으로 듣기에는 귀를 의심케 한다"면서 모리 위원장의 '여성 멸시 발언'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올림픽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문제 발언이 코로나19 영향으로 개최 전망이 불투명해진 도쿄올림픽·패럴림픽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해외 매체들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인터넷판 기사를 통해 총리를 지낸 모리 위원장의 문제 발언이 "격렬한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며 인터넷 공간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고, AFP와 로이터 등 국제 뉴스통신 매체들도 모리 위원장의 여성 차별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소개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여자 유도 52㎏ 은메달리스트인 미조구치 노리코(溝口紀子) 전일본유도연맹 평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발언 시간을 제한하지 않으면 좀처럼 회의가 끝나지 않는다'는 모리 위원장 발언을 겨냥해 "여성 이사의 문제가 아니라 회의 진행자의 수완에 달린 것"이라며 성 편견을 버리고 올림픽 정신 구현 등을 위한 메시지 발신에 힘써 달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4일 도쿄도(東京都) 신주쿠(新宿)구에 있는 일본올림픽위원회(JOC) 건물 입구에선 모리 위원장의 발언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논란이 커지자 모리 위원장은 4일 문제의 발언에 대해 취재진에 "올림픽·패럴림픽 정신에 반하는 부적절한 표현이었다. 깊이 반성한다"며 사죄하고, 발언을 철회했다.
모리 위원장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는 "사임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모리 위원장은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여성을 멸시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면서 거취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지면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며 사임 가능성을 언급했다.
parks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