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중국 당국의 승리…중국과 홍콩 사이 법적 방화벽 무너뜨려"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의 독립적 사법체계를 상징해온, 보석을 허용하는 '보석 추정'(presumtion of bail) 원칙이 무너졌다.
조만간 중국 본토로 이관돼 진행되는 재판이 많아질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시행 7개월을 넘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사법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홍콩 최고법원인 종심법원은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홍콩의 대표적 반중 매체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73)에 대한 보석을 불허했다.
앞서 라이는 지난해 12월 외국 세력과 결탁해 홍콩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나 그달 23일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풀려났다.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들 중 보석으로 풀려난 첫 사례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보석금 1천만 홍콩달러(약 14억2천만원)와 함께 경찰서·법원 이외에는 거주지를 벗어날 수 없도록 가택연금에 처하는 등의 엄격한 조건으로 라이의 보석을 허가했다.
그러나 검찰이 종심법원에 라이의 보석 결정 취소를 요청하면서 라이는 새해 전날 재수감됐다. 이후 종심법원은 지난 1일 그의 보석과 관련한 심리를 열었다.
당일 검찰은 "홍콩보안법에 따르면 피고가 국가안보를 위협할 행동을 지속하지 않는다는 충분한 근거가 없는 한 판사가 보석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판사가 보석을 허가하는 데 있어 피고가 제시한 보석 조건은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라이는 사기 혐의로도 기소됐는데, 검찰은 이에 대한 보석 허가는 문제삼지 않았다.
이날 종심법원은 항소심 재판부가 법률을 잘못 해석해 라이의 보석을 허가했다면서, 그의 보석을 최종 불허했다.
판사 5명이 만장일치로 결정했으며 외국인 판사는 참여하지 않았다.
AFP통신은 "그간 홍콩의 독립적 사법체계의 특징은 비폭력 범죄에 대해 '보석 추정'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었는데 홍콩보안법이 이러한 원칙을 없앴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반체제 인사를 몰살시키려는 가운데 홍콩보안법은 중국과 홍콩 사이 '법적 방화벽'을 무너뜨렸다"고 평가했다.
AFP는 "이번 결과는 홍콩 사법부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홍콩 사법부가 중국공산당에 부응하고 거의 유죄선고가 내려지는 중국 본토 스타일로 홍콩의 사법체계로 변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밝혔다.
종심법원이 홍콩보안법 관련 사건을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외국인 판사가 종심법원 심리에서 빠진 것은 드문 일"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라이가 보석 허가를 받자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를 강력 비판하면서 라이의 사건을 중국 본토로 이관해 다뤄야한다고 주장했다.
SCMP는 일각에서는 라이의 보석 허가 조건이 매우 엄격했음에도 검찰이 이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피고인이 준수하겠다고 내 건 보석 조건과 관계없이 피고인의 보석을 불허해야한다는 검찰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판사들은 보석 심사에서 범죄가 아닌, 피고인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것 같은 행동을 할 위험성'을 왜 자신들이 평가해야하냐고 지적한다고 밝혔다.
라이의 변호사 마크 시몬은 블룸버그통신에 "라이를 계속해서 감옥에 가두는 것은 나머지 홍콩인들에게 폭력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례는 최고 종신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홍콩보안법 관련 사건을 향후 법원이 해석하는 데 있어 일정한 지침을 내려준 것"이라며 "중국 당국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법률가들에 따르면 홍콩보안법의 일부 조항은 정부가 판사를 선택하고, 사건을 중국 본토로 이관하며, 보석 불허를 허용하는 등 영국 식민지 시절의 사법체계를 약화시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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