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서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 도운 전 시장 기록
폴란드 책임론 규제하는 '홀로코스트 법' 제정 여파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폴란드의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역사학자 2명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부역자에 대한 기록을 연구서에 남겼다가 법원으로부터 사과 명령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바르바라 엔겔킹과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는 1천600 페이지 분량의 학술연구서 '끝없는 밤'에서 나치 독일의 폴란드 점령 당시 에드바르트 말리노프스키가 나치에 부역했다고 기록했다.
폴란드 북동부 한 도시 시장이었던 말리노프스키가 숨어있던 유대인 22명의 거처를 독일군에게 밀고했다는 내용이다.
말리노프스키가 밀고한 유대인들은 처형됐다.
이에 말리노프스키의 조카는 연구서에서 삼촌이 전후 재판에서 나치 부역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이 빠져있는 데다, 오히려 유대인을 도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재판부는 역사학자들이 말리노프스키의 조카를 상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말리노프스키의 조카는 폴란드 집권 정당인 '법과 정의당'(PiS)과 가까운 단체의 지원을 받아 소송에 나섰다.
폴란드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폴란드인의 책임을 묻는 표현을 규제하는 이른바 '홀로코스트 법'이 2018년 만들어졌다.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한 뒤 강제수용소를 설치하고 유대인을 학살한 것과 관련, 폴란드도 책임이 있다거나 가담했다는 비난을 못 하도록 한 것이다.
위반 시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벌금이나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게 했는데, 이후 징역형을 삭제해 개정됐다.
홀로코스트법은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연합(EU)의 반발을 사 왔다.
폴란드에서는 전쟁 당시 320만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폴란드인이 유대인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센터는 3만5천명의 유대인을 구한 7천112명의 폴란드인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야드 바셈은 이러한 일은 비교적 드물었고, 유대인을 상대로 한 폴란드인의 공격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연구도 제시했다.
엔겔킹 교수는 법원 판결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매우 위태롭게 한다"고 비판하면서 항소 방침을 밝혔다.
야드 바셈도 "표현의 자유와 열린 연구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며 홀로코스트 연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폴란드의 유대계도 "연구자들에게 겁을 주려는 시도"라며 비판을 가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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