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평의원 참가 12일 대회조직위 임시회의서 사임 발표 가능성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올 7~9월로 연기된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향방이 개막 5개월여를 앞두고 올림픽 개최 준비 관련 4자 대표 회의가 표류하는 등 한층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애초 연기를 불가피하게 만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여전해 정상 개최 불가론이 강해지던 상황에서 대회 준비 작업을 이끄는 모리 요시로(森喜朗ㆍ83) 조직위원회 위원장(회장)의 '여성 멸시' 발언 사태라는 초대형 악재가 불거진 탓이다.
◇ "갈길 바쁜데…" 올림픽조직위 수장의 망언
지난 3일 열린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임시 평의원회.
모리 회장은 JOC의 여성 이사 증원 문제가 다뤄진 이 자리에서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시간이 걸린다"는 엉뚱한 발언을 했다.
그는 회의가 끝날 무렵의 발언을 통해 자신이 회장을 맡았던 일본럭비협회에서 여성 이사가 늘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면서 "종전보다 (회의할 때 ) 배(倍)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은 경쟁의식이 강하다. 누군가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하면 자신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모두가 발언하게 된다"며 여성 이사를 늘리게 되면 발언 시간을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중을 웃기려고 했다는 해명이 나중에 붙은 이 발언은 남녀평등에 바탕을 둔 올림픽 가치를 누구보다 중시해야 할 대회조직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거리낌 없이 한 것이라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전 세계 선수들을 초청해 여는 스포츠 제전을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 발언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확산했다.
모리 위원장은 이튿날 해명 기자회견을 열어 "올림픽·패럴림픽 정신에 반하는 부적절한 표현이었다. 깊이 반성한다"고 사죄하고 문제 발언을 철회했지만 사임 의사는 밝히지 않았다.
◇ 커지는 사퇴 압박…조만간 '항복 선언' 가능성
모리 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처음 보도된 뒤 사임 의사를 주변에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지난 4일 해명 기자회견 직전의 언론 인터뷰에서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지면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고 말해 사임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정작 기자회견에선 사죄의 뜻만 밝히고 사임을 선언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 국내외의 비판 목소리가 커져 도쿄올림픽 개최 준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나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면서 "'늙은이'(老害·꼰대)가 대형쓰레기가 됐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쓸어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본인이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할 처지가 아님을 내비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코로나19로 정상 개최가 어려워진 올림픽 개막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조직위 수장 교체 사태가 대회 준비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정부 측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IOC의 마크 애덤스 대변인은 모리 위원장의 해명 기자회견 후에 "사죄 뜻을 밝혔으니 문제는 종결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조직위가 독립행정법인인 점을 내세워 조직위의 문제라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사태가 그대로 진정되길 원했던 IOC나 일본 정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일본 국내외의 사임 촉구 여론이 점점 거세지는 상황이어서 모리 위원장의 사임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당장 IOC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논란 초기에 모리 위원장을 사실상 두둔한 IOC는 9일 "(여성멸시 발언은) 완전히 부적절하고 IOC 공약과 올림픽 개혁에도 반한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개최 도시인 도쿄도(都) 차원에서도 자원봉사 예정자들이 문제 발언에 반발해 집단 이탈 움직임을 보이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모리 위원장의 사임을 압박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가 이달 중 예정된 도쿄올림픽 개최 준비를 위한 '4자 회담'에 불참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 회담에는 올림픽 개최 관련 4자인 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 일본 정부 대표인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올림픽담당상, 개최 도시 대표인 고이케 지사, 대회 조직위 수장인 모리 위원장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고이케 지사는 모리 회장의 발언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여는 4자 회담에선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불참 이유로 내세웠다.
모리 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일본 정치권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입헌민주당 등 3개 야당은 10일 모리 위원장이 사임하도록 스가 총리에게 촉구하기로 했다.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이루는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도 이날 "IOC의 평가가 나왔고 여론 동향도 있다"며 그걸 고려해 진퇴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야권은 물론이고 여권 쪽에서도 사퇴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오는 12일 이사와 평의원이 참여한 가운데 열릴 예정인 조직위 합동 임시회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임시회의는 애초 모리 위원장이 거듭 사죄 의사를 표명하고 비판 여론을 진정시키려는 목적에서 마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리 위원장에 대한 일본 국내외의 퇴진 압박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이어서 결국 그가 퇴진을 선언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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