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으로 분단 반세기 증언…소설 '광장' 모델 故현동화 씨

입력 2021-02-12 22:42   수정 2021-02-13 14:07

자신의 삶으로 분단 반세기 증언…소설 '광장' 모델 故현동화 씨
인민군 출신 '반공포로'로 12일 별세…휴전 협정 후 제3국 선택
인도서 사업 성공…20년간 한인회장 역임·교민사회 기반 구축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12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현동화 전 재인도한인회장은 자신의 삶을 통해 분단 반세기의 굴곡을 생생하게 증언한 인물로 꼽힌다.
현 전 회장은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한 '반공 포로'다.
193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 강원도 화천전투에서 크게 다치고 한국군에 귀순했다.
해방 후 북한에 살면서 남한을 동경한 그는 고향 마을이 폭격을 당해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 때문에 북으로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가족 사망 소문이 사실이 아니면 자신의 남한 잔류가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될 점도 우려했다.
결국 그는 휴전 협정 체결 후 남한이나 북한이 아닌 제3국행을 희망했다.
이런 그의 이야기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도 남과 북 어느 곳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인도행 타고르호에 올랐다.
현 전 회장은 과거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수송선에 몸을 싣고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볼 때 다시는 조국 땅을 밟을 수 없겠구나 하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남중국해 인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명준과는 제3국행 선택 동기나 이후 삶의 궤적이 완전히 달랐다.
현 전 회장은 인도를 거쳐 멕시코로 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학업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멕시코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을 받지 못하면서 동료 3명과 함께 인도에 정착했다.
현 전 회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중립국 행을 택한 계기가 '광장'에서 묘사된 것처럼 이념적 고려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멕시코에 가면 이웃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도 다니고 더 공부할 수 있겠다"는 현실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인도에는 교민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현 전 회장 등은 인도에서 '한인 1세대'가 됐다.
이들은 인도 정부로부터 돈을 빌려 양계장 사업을 시작했다.
황무지를 개간해 사업을 벌인 이들은 초기에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현지 주민도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결국 여러 시련을 딛고 양계장 사업은 자리를 잡았고 한국에 가발산업이 번성할 때 인도산 인모(人毛)를 수출하는 무역업으로 큰돈을 벌기도 했다.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일 때는 인도의 값싼 인력을 송출하는 사업도 벌였다. 아프가니스탄 섬유공장 건설 등을 통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기댈 곳 하나 없던 인도에서 근면과 성실로 성공적인 삶을 개척한 것이다.

1962년 뉴델리에 한국 총영사관이 생기면서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북에 두고 왔던 어머니와 형제가 서울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가족과 상봉하기도 했다.
1984년부터는 20년간 재인도한인회장을 맡으며 교민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한국 기금'을 만들어 한국어 과정을 마친 인도 학생의 연수를 지원하는 등 양국 민간 교류에도 힘썼다.
그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중립국행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열심히 살았고 그때마다 한국과 인도의 관계가 좋아졌기에 후회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전 회장은 2017년에는 한국-인도 간 수교와 교류, 인도 내 한인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다만, 남북통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점은 안타까움으로 남게 됐다.
현 전 회장은 생전에 "통일은 우리가 풀어야 할 지상 최대의 과제"라며 하루빨리 통일이 이뤄져 고향 땅을 밟고 싶다는 희망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앞으로 다시는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전 회장은 경기도 남양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병 치료를 위해 2018년 귀국한 상태였다.
coo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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