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백신 게이트' 일파만파…공무원 등 487명 새치기 접종

입력 2021-02-17 01:30  

페루 '백신 게이트' 일파만파…공무원 등 487명 새치기 접종
"선장은 마지막에 내려야 한다"던 전 보건장관도 알고보니 미리 접종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대통령과 장관을 포함한 페루 고위층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새치기 접종' 스캔들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페루 일간 엘코메르시오 등에 따르면 전날 프란시스코 사가스티 임시 대통령은 페루에서 코로나19 백신의 접종이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은밀하게 백신을 맞은 48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중국 제약사 시노팜 백신의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한 페루 카예타노 에레디야 대학이 제공한 명단엔 지난해 11월 비리 의혹으로 탄핵당한 마르틴 비스카라 전 대통령을 포함해 보건부·외교부 장관 이하 공무원들도 다수 포함됐다.
현지 언론이 '백신 게이트'라고까지 칭하는 이번 스캔들의 발단은 비스카라 전 대통령의 접종 사실을 폭로한 지난 11일 한 매체의 보도였다.
일간 페루21은 그가 퇴임 전인 지난해 10월 임상시험 중이던 시노팜의 백신을 두 차례 접종했다고 전했다.

페루는 남미 이웃 국가들보다 늦은 지난 9일 시노팜 백신으로 의료진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개시했는데, 대통령은 이보다 4개월이나 먼저 같은 백신은 맞은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명단엔 알려진 대로 비스카라 전 대통령과 부인 외에 그의 형 이름도 들어 있었다.
비스카라 전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그의 탄핵에 항의해 격렬한 시위를 벌일 정도로 여론의 지지를 받아온 인물이었기 때문에 국민의 배신감은 더욱 크다.
지난 13일 접종 사실을 시인하고 물러난 엘리사베트 아스테테 전 외교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관계자들도 명단에 포함됐다. 아스테테 전 장관은 지난 1월 시노팜 백신 구입 계약을 직접 승인한 후 백신을 맞았다.
명단 속 인물 중 특히 국민의 분노를 자아낸 인물은 필라르 마세티 전 보건장관이다.
페루 정부의 코로나19 대책 책임자인 마세티 전 장관은 의료인 접종이 시작된 후인 지난 10일 "선장은 가장 마지막에 배를 떠나야 한다"며 보건 종사자가 모두 백신을 맞고 난 후에야 자신도 접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비스카라 전 대통령의 접종 사실이 폭로된 후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12일 물러나면서도 자신의 접종 사실을 시인하지 않았다.

마세티 전 장관 뒤를 이어 사임한 루이스 수아레스 오그니오 보건차관도 아내와 두 자녀, 누나까지 일가족을 데리고 백신을 맞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들의 새치기 접종 실태가 폭로되자 페루 국민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인구 3천300만 명 페루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24만 명, 사망자는 약 4만4천 명이다. 최근 2차 유행 속에 극심한 산소난도 나타난 데다, 장기간의 봉쇄로 지난해 경제가 11% 이상 후퇴하는 등 국민의 경제적 고통도 큰 상황이다.
비스카라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임시 대통령까지 한 차례 교체되는 극심한 정치 혼란 속에 정부의 백신 확보도 이웃 나라들보다 한참 늦어졌다.
페루 의사단체의 고도프레도 탈라베라는 AP통신에 "정부가 백신 구매에 왜 그리 오래 걸렸는지 이제야 알겠다"며 "그들이 이미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사가스티 임시 대통령은 전날 487명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분노와 깊은 고통을 느낀다. 많은 공무원이 그들의 지위를 이용했다"며 명단을 의회와 검찰 등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사가스티 대통령의 경우 접종 개시 첫날인 지난 9일 공개적으로 백신은 맞은 바 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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