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용 블록체인학회장 "기술 측면서 비트코인 가치 충분"
"과도한 규제로 국내 블록체인 생태계 고사 위기"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비트코인. 현대판 튤립 광풍인가 금 이상의 안전자산인가. 비트코인 가격이 5만달러를 돌파하면서 거품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대표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시작되던 작년 3월 개당 4천900달러대에서 지난 16일엔 5만달러로 1,000% 이상 뛰었다.
특히 2030 MZ세대들이 주축이 된 글로벌 개미군단이 비트코인 투자에 열을 올리고, 테슬라와 JP모건 등 첨단기업과 금융 메이저까지 투자에 가세하거나 관심을 보이면서 열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넘쳐흐르는 글로벌 유동성은 암호화폐 시장으로 꾸역꾸역 흘러넘치고 있다.
비트코인은 달러처럼 함부로 찍어낼 수 없다. 전량 채굴해도 2천100만개, 현재는 1천900만개가 유통되고 있다.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가 몰리면 가격이 뛰는 것은 당연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비트코인 가격을 보면 지속 가능성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비트코인 열풍의 근저를 들여다보고 전망을 알아보기 위해 시장 전문가가 아닌, 비트코인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의 권위자인 박수용 서강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박 교수는 한국블록체인학회 회장도 맡아 블록체인 기술 확산과 산업화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 "역사적으로는 기존 화폐·중앙 권력에 대한 불신 때문이죠"
잠잠해질 만하면 다시 들불처럼 번지는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왜 일어나는지를 물었더니 박 교수는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에 포커스를 맞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거리엔 실업자가 넘쳐나고 자산 가치 폭락으로 서민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은 달러를 마구 찍어내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을 살렸습니다. 하지만 구제받은 금융기관과 기업 CEO들은 그 돈으로 성과급 파티를 벌였지요. 그때 '월가 점령' 시위에서 봤듯 개미투자자들이 들고일어났고 달러와 제도금융,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누구도 개입이나 조작을 할 수 없는 화폐를 꿈꾸는 그룹이 생겨났습니다. 2009년 비트코인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박 교수는 "비트코인은 국가이든 중앙은행이든 어느 권력도 개입할 수 없는 투명한 알고리즘 기반으로 발행되는 디지털 화폐"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보건·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작년부터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이 화폐 발행을 엄청나게 늘렸고, 달러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자연스럽게 비트코인으로 몰려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미국에서 개미투자자들의 분노와 응집력을 키운 게임스탑 공매도 사태가 정부와 제도권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을 높였고 이게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면이 있다"고 했다.
◇ "기술 측면서는 비트코인 가치 충분"
박 교수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기술적 측면에서만 보면 비트코인 가치는 오를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미래의 금융은 디지털 기반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탈중앙화한 암호화폐들이 미래 통화의 기반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통제 속에 있는 기존의 제도권 은행시스템과 미래 기술인 디지털 화폐가 갈등 관계이지만 이미 흐름은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암호화폐들은 대부분 최근 3∼4년 이내에 만들어졌지만, 비트코인은 이미 10년이 넘어 안정성과 신뢰성이 입증된데다 발행량의 한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희소성도 갖췄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사람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통화로서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것"이라면서 "비트코인 역시 기술적으로나 안정성으로나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이를 인정하기에 화폐로서의 가치와 가격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고 봤다.
박 교수는 "공급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는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에 그 가치는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현재 상황을 버블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과도한 규제로 국내 블록체인 생태계 고사 위기"
박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을 "네트워크 내의 모든 참여자가 공동으로 거래 정보를 검증하고 기록·보관함으로써 공인된 제삼자의 개입 없이도 무결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믿음의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박 교수는 "암호화폐의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은 한때 투자가 들어오면서 생태계를 갖추어가다가 2017년 암호화폐 가격 폭등으로 과열 논란이 일고 각종 사기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규제가 심해지고 돈줄이 말라버렸다"고 했다.
그는 지금 국내 블록체인 기술은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중국보다도 훨씬 뒤졌다고 했다. 이미 미국과 영국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갖고 있고, 디지털 화폐 발행과 지급 결제, 은행의 거래 원장 관리, 신재생에너지 거래, 무역, 상품원산지 등 이력 추적, 명품 위변조 판별 등 신뢰가 요구되는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정부도 블록체인 기술 자체의 산업적 활용은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예산도 투입하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가 일어나지 않아 기술의 확산 속도가 느리다"면서 "이 분야의 핵심인 암호화폐 시장을 열어줘야 이를 기반으로 응용·파생상품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지금 세계적으로 보면 암호화폐, 암호자산을 기반으로 한 De-Fi(Decentralized Finance) 서비스와 시장이 활성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게 막혀 있다"고 했다. De-Fi는 금융시스템의 중개자인 은행이나 증권사, 카드사 등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상에서 블록체인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예금, 결제, 보험 투자 등의 금융서비스를 일컫는다. 그는 "예컨대 요즘 글로벌 추세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디지털 토큰화한다든지 이를 잘게 쪼개 사고팔 수 있도록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할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박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태로 5년, 1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경제시스템에서 낙오되고 기술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kimj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