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들과 달리 취임 초 외국 순방 전혀 못하고 집무실 칩거
'미 리더십 회복' 어젠다 차질 우려…"이점도 많다" 평가도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다. 뉴노멀이 일상으로 자리잡아가는 시대, 외교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에서 팬데믹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미국의 새 국무장관으로 취임한 토니 블링컨 장관이 전례 없는 '버추얼(virtual.가상)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 소개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달 말 취임한 뒤 약 한 달 동안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미국 고립주의' 외교 노선에서 탈피하기 위해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는 전 세계 수십여국의 동맹 및 파트너국 장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시아와 유럽 지도자들과의 모임에도 분주히 참석했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은 워싱턴DC 국무부 건물 7층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떠나지 않은 채 이뤄졌다.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거의 모든 외교 방문 일정이 연기됐기 때문이다.
국무부 관계자들은 블링컨 장관이 코로나19 백신을 이미 접종했지만 참모, 보안 요원, 기자단 등 한꺼번에 많은 수행 인원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외국 방문 일정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고위 관료는 현재로선 블링컨 장관의 해외 방문 계획이 잡힌 것이 없다면서 최소한 3월 말까지는 계속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까지 외국을 종종 순방했던 전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대비되는 행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경우, 물론 당시에는 팬데믹이라는 변수가 전혀 없을 때였지만 2009년 1월 취임 이후 4월 초까지 일본,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등 약 15개국을 방문했다.
'버추얼 외교'를 펼치는 것은 블링컨 장관만이 아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현재까지 해외 방문 계획이 없는 상태이며,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낼 당시 외국을 '종횡무진' 순방한 것으로 유명한 존 케리 기후특사 역시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버추얼 외교 방식이 '미국이 돌아왔다'는 바이든 정부의 구호를 실행하는데 차질을 줄까 우려된다는 점이다.
하루빨리 동맹국들과의 다자외교를 복원하고 중국, 러시아 등에 맞서 미국의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하는 절실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교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어서 가까이에서 눈을 맞추고, 악수하고, 함께 식사도 하며 선물을 주고 받는 등의 물리적 접촉은 친밀도를 높이는 데 있어 대체할 수 없는 요소라고 외교관들은 지적한다.
지난 19일 화상으로 열린 뮌헨안보회의도 원래대로였다면 블링컨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대서양 동맹국 지도자들과 어깨를 맞댈 수 있는 행사였지만 이 중요한 기회 역시 놓쳤다는 것이다.
국무부 관계자들은 그러나 이같은 방식이 여행에 소비되는 시간을 줄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이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주중 미 대사 후보 중 하나로 물망에 오르는 니컬러스 번스 전 국무부 차관은 "이전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집에 머문다고 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받는 것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 이후 새로운 업무 방식에 직원들도 익숙해지고 있다면서 "화상 회의 방식은 앞으로도 하나의 옵션으로 계속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y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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