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의 힘…300년전 서한 봉인 안 뜯고 읽었다

입력 2021-03-03 01:01  

현대 의학의 힘…300년전 서한 봉인 안 뜯고 읽었다
X선 마이크로 단층촬영으로 복잡하게 접은 서한 "가상 개봉"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약 300년 전 주인에게 전달되지 않은 근세 유럽의 편지를 봉인을 뜯지 않고도 첨단 X-선 의료 기술을 이용해 내용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으로 학계에 보고됐다.
당시 유럽에서는 지금과 같은 편지 봉투가 사용되기 전으로 편지지 자체를 복잡하게 접어 안의 내용을 볼 수 없게 봉인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며, 이런 서한은 개봉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될 우려가 컸다. .
영국 런던퀸메리대학에 따르면 매사추세추공과대학(MIT) 도서관의 보존처리 전문가 자나 담브로기오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X-선 마이크로 단층촬영 스캐너를 이용해 봉인을 뜯지 않고 편지의 내용물을 파악한 결과를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를 통해 발표했다.
이 스캐너는 퀸메리대학 연구진이 치과 연구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종이와 양피지에 잉크로 쓴 글자에 포함된 미세한 금속 성분을 포착한다. 의료용 컴퓨터 단층촬영(CT)과 유사하지만 훨씬 더 강력한 X-선을 이용해 겹겹이 접은 편지의 3차원(3D) 이미지를 만들고, 접힌 부분을 각각 분리해 글자를 읽어냄으로써 편지를 개봉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1680년부터 1706년 사이에 유럽 각지에서 네덜란드 헤이그로 보낸 2천600통의 서한이 제대로 배달되지 않고 우체국장 부부의 트렁크에서 발견된 '브리엔 소장품'의 서한들을 "가상 개봉해" 읽었다. 브리엔 소장품은 현재 네덜란드 우편 박물관에 기증돼 있다.



이 중에는 1697년 7월 31일 프랑스인 자크 세나크가 헤이그에서 상인으로 활동하는 조카 피에르 르 페어에게 친척의 사망 증명서를 요청하는 서한(DB-1627)도 포함돼 당시 일반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봉인을 뜯지 않고 서한 내용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전에는 봉인을 뜯어야만 가능했던 일로, 개봉 과정에서 종종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서한이 훼손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가상 개봉을 통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서한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편지를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편지를 접는 복잡한 방식까지 시각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eomn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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