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식부터 종교 간 화해·공존 모색…이슬람과의 대화 특히 강조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사상 최초의 이라크 방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즉위 이래 지속해온 종교 간 화합·공존을 위한 행보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교황은 이라크 방문 이틀째인 지난 6일(현지시간) 이슬람 시아파의 성지인 나자프에서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50여 분간 비공개 회동했다.
2천 년 역사의 가톨릭교회 수장과 시아파 최고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역사상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전 세계 가톨릭·이슬람 교계는 교황이 이맘 알리(시아파 1대 이맘) 영묘 인근에서 차량에서 내린 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알시스타니 자택까지 수 미터를 걷는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교황이 알시스타니 자택 출입구에 들어설 때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장면은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았다.
이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주요 지도자를 모두 만난 역대 첫 교황으로 기록됐다.
교황은 즉위 이래 이집트 수니파 최고 종교기관 알아즈하르의 대(大)이맘 셰이크 아흐메드 알타예브를 비롯해 수니파 주요 지도자들과 여러 차례 회동한 바 있다.
종교 간 화합은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를 비롯한 역대 많은 교황이 수없이 강조한 주제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구보다 이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또한 행동으로 옮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2013년 3월 즉위식 당시 유대교·이슬람교·불교·시크교·자이나교 등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이 참석해 '화합의 장'을 마련한 것은 그 시작이었다.
1054년 동서 교회 분열 이후 처음으로 터키 정교회 총대주교인 바르톨로메오스가 교황 즉위식에 참석한 것도 이목을 끌었다.
교황은 즉위 하루 뒤 이슬람을 포함한 세계 주요 종교 대표자들과 만나 '우의와 존중'을 강조한 데 이어 그 이틀 뒤에는 교황청 주재 180여 개국 대사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종교 간 화합이 재위 기간 풀어야 할 과제의 우선순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당시 교황은 특별히 이슬람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중은 바티칸 밖으로의 사목 방문으로 구체화했다. 교황은 이라크를 포함해 즉위 이래 진행한 33차례의 해외 방문 가운데 절반 이상을 비가톨릭권에 할애하고 가는 곳마다 종교 간 화합·공존을 설파했다.
가톨릭계 일각에서는 교황이 역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다.
성 프란치스코(1181∼1226)는 평생 청빈한 삶을 살며 가난하고 헐벗은 이를 보살핀 가톨릭 성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해선 생전 주목할 만한 활동 하나가 더 있다.
성 프란치스코가 창설한 수도회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 따르면 성 프란치스코는 5차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219년 순교할 각오를 하고 이집트 땅에 들어가 술탄을 만났다.
성 프란치스코 전기 작가들은 그가 술탄과 이슬람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이집트로 갔다고 썼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을 중단시키고 종교 간 화해·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주장도 전해진다.
그 의도와 관계없이 성 프란치스코가 당시 기독교 대다수가 적으로 돌린 이슬람 지도자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종교 간 화해를 추진한 선구자로 보는 평가가 많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교황 선출 직후 교황명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며 이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교황은 당시 "가난한 사람. 이들을 생각하니 곧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떠올랐다. 그리고 (콘클라베의) 개표가 끝날 때까지 숱한 전쟁을 생각했다. 프란치스코는 '평화의 성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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