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석방'에 자경단 필요성 전역에 확산…10~15명 돌아가며 밤새워
"두 차례 새벽 방화 껐다" 자부심…자경단원 피살 소식엔 불안감도 내비쳐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2월에는 두 번이나 새벽에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일어났는데 재빨리 껐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의 폭력 진압으로 희생이 커지는 가운데, 미얀마 시민들은 밤에도 깨어 있다. 스스로를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다.
군부는 야간에 쿠데타에 저항하는 주요 인사들을 기습 체포한다.
쿠데타 이후 법원 허가 없이 시민을 체포하거나 압수 수색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무력화했다.
새벽 1시부터 오전 9시까지 어김없이 인터넷을 차단해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다.
최근에는 심야에 노골적으로 주택가까지 들어와 총을 난사하며 시위대를 색출하기까지 한다.
자경단 결성이 이뤄진 결정적 계기는 군부가 지난달 중순 수감 중인 극우 승려를 포함해 죄수 2만3천여 명을 사면한 직후다.
풀려난 친군부 폭력배들이 심야에 방화 등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군부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 불꽃이 거대하게 타올랐던 1988년에도 똑같이 흉악범들에 대한 사면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방화는 물론 마을마다 있던 우물에 독극물 살포 테러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그런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마을 인사들을 중심으로 자경단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SNS를 통해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미얀마는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겪으면서 도시 계획이 잘돼 있는 편이다.
미얀마 시민들은 작은 도로인 스트리트(street·거리)를 중심으로 통금 시간에 맞춰 나무나 철조망 등으로 마을 양쪽 입구를 막고 마을로 들어오려는 외부인에 대해 검문 검색을 한다.
취약 지역을 순찰하면서 범행을 막기도 한다.
자경단은 또 군경의 진입이 예상되면 신호로 알려 주민들이 불을 끄고 숨죽이도록 한다.
누군가 군경에게 붙잡히면 냄비를 두드려 항의하고 끌려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도 자경단의 임무다.
이틀 전인 10일 밤 400여 가구가 거주하는 양곤의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아갔을 때 단지의 자경단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순찰을 마치고 잠깐 쉬는 순찰조였다.
그들은 날마다 10명에서 15명 정도가 아파트 경비원들과 함께 경비를 서고 있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지난달 13일부터 자경단에 자원해 활동 중이라는 30대 A씨는 기자에게 "자원한 사람들이 70~80명쯤 되고 날마다 10명에서 15명이 꾸준히 밤새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에는 두 번이나 새벽에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발생했는데 우리가 재빨리 껐다"며 활동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일부 지역에서 자경단원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불안감도 드러냈다.
함께 활동 중인 자경단원 B씨는 "양곤 쉐삐따에서도 30대 남성 자경단원이 살해됐고, 따닌따리 주의 더웨이에서도 20대 자경단원이 칼에 찔려 죽었다"며 "다들 불안하지만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니, 이름을 묻지도 말고 사진에도 얼굴이 나와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백여 가구가량이 거주하는 마을이라면 대략 80~90명쯤이 자원해서 자경단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요일별로 나눠 일주일에 한 번씩 야간 경비를 선다. 주민들은 야식을 준비한다.
자경단으로 활동 중인 한 미얀마 시민은 "여성들만 사는 집을 빼고 자경단 자원봉사자가 90명쯤 된다"면서 "야간 경비를 서는 날은 야식에 배부르다"며 고생 가운데서도 소소한 낙이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현지에선 오후 8시부터 시작되는 통행금지 시간을 악용, 방화 및 범죄 소식이 전국 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특히 자경단원들이 범행 현장에서 붙잡아 인계한 폭력배들을 경찰은 그냥 풀어주고 있어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군과 국민의 안녕을 챙겨야 할 경찰이 각각 그 반대로 국민을 위협하고,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
이런 '있을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미얀마 시민들은 오늘도 밤늦은 시간에도 잠을 자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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