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공급부족·SK 거부권 주장 방어 등 '일석이조' 효과 노린 듯
(서울=연합뉴스) 김영신 기자 = LG에너지솔루션이 12일 미국에서 2025년까지 5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에 나서겠다고 공개한 것은 미국 전기차 시장 확대에 긴밀하게 대응함과 동시에 SK이노베이션과 벌이고 있는 배터리 분쟁 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급성장하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선두 공급 업체로서 입지를 공고하면서, 미국 정부의 거부권 행사가 쟁점인 SK이노베이션과의 협상에서 LG에너지솔루션에 유리한 국면을 이끌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단 LG에너지솔루션이 과감하게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배경은 미국 전기차·ESS 시장 급성장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그린뉴딜 정책 영향을 반영해 상향 조정한 미국 전기차 시장 전망에 따르면, 시장 규모는 지난해 30만대에서 2025년 240만대, 2030년 480만대, 2035년 800만대 등으로 연평균 25% 성장이 예상됐다.
기존 예상치는 2025년 기준 150만대로, 그린뉴딜 수혜로 전기차 시장이 동기간 약 90만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미국 ESS 시장 전망치 역시 빠르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 우드 매킨지는 미국 ESS 수요가 2019년 523MW에서 2020년 1.5GW, 2021년 3.6GW로 계단식으로 증가해 2025년 7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미국 텍사스 등의 한파 영향까지 겹쳐 실제 수요 성장은 이보다 더 빠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배터리 공급물량은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2025년에 배터리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예측했다. 작년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154GWh, 공급은 502GWh지만 2025년에는 수요가 1천254GWh로 증가하는 반면 공급은 1천163GWh에 그친다는 것이다.
특히 친환경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북미와 유럽에서 배터리 공급이 심화될 것으로 SNE리서치는 내다봤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작년부터 미국에 신규 부지를 확보해 공장을 짓는 방식인 '그린필드' 투자를 검토해왔다"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확대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미시간 공장과 추가로 건설할 2곳 이상의 독자 공장, GM과 합작법인에서 생산하는 물량을 합하면 GM을 비롯한 여러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게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의 미국 진출이 막힌 상태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투자만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이 사전에 투자계획을 공개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다소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통상은 부지가 확보되지 않았거나 행정기관으로부터 각종 인센티브를 받아내기 전에 투자계획을 먼저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ITC 배터리 분쟁에서 패소하고 미국 정부에 거부권 행사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096770]에 대한 방어 차원도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10년간 수입이 금지돼 배터리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배터리 공급 부족과 함께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내 독점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대응해 LG에너지솔루션은 자사의 투자 확대를 통해 충분히 배터리 수요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내 공장이 모두 완공돼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0% 안팎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SK이노베이션 미국 사업 차질이 고용 창출 등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는 논리에 맞서, LG에너지가 창출할 경제적 효과를 강조해 미국 정부를 안심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LG-SK간 미국 ITC 최종 결정에 대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검토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투자 계획이 미국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안정적 공급망,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자적으로 건설할 2곳 이상의 배터리 생산 공장에서 1만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고, 기존 미시간 공장 1천400명과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GM과의 합작법인 1천100명을 합치면 고용 인원이 6천500여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구·개발부터 제품 개발·생산, 원재료 조달에 이르는 전 과정을 미국 내에 갖춘다는 공급망 정책도 강조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미국 친환경 산업 확대와 수주 프로젝트 확대 논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제 투자를 결정했다"며 "2030년까지 투자를 지속할 예정으로, 고객사들과 다양한 형태의 공급망 구축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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