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가 걸작" 교장이 직접 동영상으로 소식 전해
대학 신입생들 장학금 시위…코로나로 대학 지원 예산 감축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프리토리아의 한 사립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장이 직접 나서 동영상으로 학교 소식을 학부모에게 보냈다.
올해 새로 부임한 이 교장은 학교 페이스북 동영상 '버추얼 뉴스레터'에서 노타이 차림의 산뜻한 복장으로 색깔 연기 나는 폭죽을 터뜨리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학교에서 보내는 '가정 통신문'이라고 하면 딱딱한 문어체에 사무적인 데 비해 동영상으로 소식을 교장이 직접 전하는 장면에서 새삼 신선함을 느꼈다.
물론 이메일로 보내는 문서 형식으로 학교 소식이라든지 새로운 방침을 전해오기도 하지만 동영상으로 요즘 학생들이 지내는 모습이라든지 밸런타인데이 교내 행사 등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동영상을 보낸 이메일 소개 문구에는 "모든 아이가 하나의 걸작이다"라고 돼 있다.
다른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교민에게 물어보니 그곳도 최근 동영상으로 학교 소식을 보내온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가 지난해 거의 문을 닫았다가 올해 2월부터 새 학기와 함께 재등교를 하면서 새로운 면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것도 비교적 형편이 나은 사립학교에 해당되지, 정작 많은 공립학교들은 재정 등에서 대체로 그럴 만한 입장이 못 된다고 한다.
남아공 대학들도 3월부터 개강에 들어갔다.
그러나 최근 남아공 대학가는 모처럼 다시 시작된 캠퍼스 수업으로 한창 들뜨기보다는 시위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남반구인 남아공은 지금 봄이 아닌 가을로 가고 있다.
남아공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 속에 전반적 재정 긴축의 일환으로 고등교육 지원 예산을 줄이면서 올해 신입생 수천 명이 부모의 실업 등에 따른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학생들은 집단 시위에 나섰고 지난 10일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에서 진압 경찰이 쏜 유탄에 시위 현장 부근에 서 있던 한 30대 남성인 음토코지시 은툼바가 맞아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급기야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직접 나서 총격 사망 사건을 질타하고 이후 비상 각의까지 열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래서 지원 자격이 되는 가난한 학생들은 모두 다 자금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고 블레이드 은지만데 고등교육 및 과학기술부 장관이 11일 밝혔다고 현지신문 비즈니스데이가 이튿날 보도했다.
하지만 무상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의 불만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아 12일 현지 eNCA 방송 화면에는 시위 학생들이 과거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시대에 세워졌다는 한 인물 동상을 끌어 내리려고 시도하는 시위 장면이 실시간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식민시대 교육 유산이라면서 밧줄을 동상 목에 걸고 끌어내리려고 했지만, 경찰이 와서 밧줄을 끌러 압수해갔다
다만 시위대원을 연행하거나 체포하지는 않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철폐와 함께 1994년 첫 흑인 민주정권이 들어선 지 어언 30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남아공 교육 현실은 아파르트헤이트를 거론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이번 대학생 시위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악화에 따른 재정 감축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한세대가 다 되도록 교육 여건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징후일 수도 있다.
오히려 교민들은 남아공 교육이 후퇴했다면서 특히 대학 순위가 20, 30년 전만 해도 세계 100위권 안에 든 곳이 두세 군데 될 정도였지만 지금은 한참 아래로 밀려나 있다고 지적한다.
토착 백인들도 현지 대학 수준이 낮아졌다면서 형편이 되면 자녀들을 유럽이나 호주 등으로 많이 보내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록다운(봉쇄령) 와중에 수많은 일선 학교가 기물 파손이나 약탈 등의 대상이 된 것은 충격적이다.
오죽 생활이 어려우면 미래의 꿈나무들이 다니는 학교까지 그렇게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실상 '교육 최우선'인 대한민국 출신의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남아공은 치안 불안으로 중고생은 물론 대학생까지 타깃으로 한 무장세력의 학생 집단 납치극이 지난해 12월 이후 네 번 이상 발생한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보다는 훨씬 나은 형편이다.
코로나로 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도 지구촌에서 누구나 다 누리는 '혜택'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