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만호 바쁜데 분노한 민심은 해체 요구…정부 고심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투기 의혹 직원들이 만든 진창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정부는 당장 83만호 주택 공급을 위해 LH를 손발로 써야 하지만 분노한 민심은 국민의 믿음을 저버린 공기업은 필요 없다며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갈 길이 바쁘지만 민심을 받들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중 LH를 어떻게 환골탈태시킬 것인지 방향을 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워낙 거대 조직이어서 수술이 간단치 않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인력 운용과 업무 효율 저하로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깨끗하고 투명하면서도 국민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조직으로의 변신을 위해 미래지향적이고 주도면밀한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 LH 어떻게 쪼개나…이번 주 윤곽 나올 듯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LH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LH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 불능으로 추락했다. 그야말로 해체 수준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혁신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신뢰 회복이 불가능한 조직은 존재 이유가 없다. 따라서 해체 후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LH 수술 미션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떨어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은 15일 페이스북에 "2009년 이명박 정부가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한 이후 너무 많은 정보와 권한이 집중됐다"며 "상호 감시와 견제가 작동하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했다.
LH를 기능별로 쪼개는 방식으로 분리해 권한과 정보의 집중을 줄이는 방향의 개혁이 정부와 여당 내에서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LH는 신도시 조성부터 도시 정비와 재생, 혁신도시나 경제자유구역 등의 지역균형사업, 공공주택 분양, 취약계층과 청년·신혼부부 임대주택 등의 주거복지사업 등 국가 주택정책 전반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토지의 수용과 개발, 용도변경 등과 관련한 정보도 오로지 하고 있다. 직원 수 9천500명에 자산 규모 184조원, 부채 9조원 안팎의 공룡이다. 전국에서 진행 중인 신도시 사업만 해도 90여 곳에 가깝다.
LH를 어떤 형태로 개혁한다고 해도 조직만 나눠질 뿐 사람은 그대로다.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합쳤을 때는 조직과 인력의 구조조정을 통해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인다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사업 영역이 문어발식으로 확장되면서 조직과 인력이 증가했고, 관리 소홀 속에 공인으로서의 윤리도 타락하면서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의 독버섯이 자라났다.
정부는 내부 논의와 여론의 추이, 업무의 연속성 등을 두루 감안해 이르면 이번 주 후반 LH 혁신 방안의 윤곽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 개혁에는 공감·개편 방식은 제각각…전문가도 백가쟁명
LH를 어떻게 수술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학계, 시장에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공룡 LH의 개혁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개편 방식은 제각각이다.
도시전문가인 김진애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는 LH를 해체해 분권 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국토교통부 밑에 주택청을 신설해 주거복지, 주택공급 등 주거 안정과 관련한 정책을 총괄하게 하고 LH는 주거복지 전달체계 업무를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미래연구소 소장인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KBS 최강시사에 출연해 토지업무 담당 조직과 주택 건설·분양·임대 조직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주택 분양과 임대의 경우 분양은 민간에 맡기고 공공은 임대주택만 담당토록 하면 직원들이 투기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학자들의 의견도 다양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를 4등분해 택지개발은 LH, 주택사업은 주택공사, 지은 주택의 관리는 관리공단, 도시 정비와 재생은 도시재생공사에서 맡도록 기능을 나누면 권한과 정보의 분산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비대한 조직의 슬림화를 위해 LH는 전체적인 국토계획이라든가 주거복지정책, 신도시정책 등의 컨트롤타워를 맡고 지방자치단체가 가진 도시공사들에 개발 기능을 넘기게 되면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기능을 쪼개고 분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자칫 조직 개편을 잘못했다가는 업무 효율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투기는 조직을 나눈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투기할 엄두를 못 내도록 내부통제시스템과 관련 법률을 통해 강력하게 처벌하면 된다는 논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각에서 LH 업무를 지방으로 이양하거나 민간에 넘기는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지방 공무원이나 지방공기업, 민간이 LH보다 깨끗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화를 키울 수도 있다"면서 "투기 문제는 조직 해체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 강력한 규제와 처벌이 요구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 역시 "쪼개기나 명칭 변경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으나 이는 무늬만 바꾸는 것일 뿐 근본적 혁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면서 "결국은 사람이 문제인 만큼 강력한 내부통제와 처벌, 바닥에 떨어진 윤리의식의 제고 등으로 해결해야 하며 굳이 조직을 개편한다면 토지와 주택부문을 나누고 주택청을 설치하는 방안은 검토해볼만 하다"고 했다.
kim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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