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성중독 언급에 애틀랜타 시장 강력 반발
"해당 스파들 합법운영…단속대상도 아냐"
아시아계 겨냥 증오범죄 급증…"우리를 죽이는 것을 멈춰라"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연쇄 총격으로 한인 6명을 포함해 8명을 살해한 용의자가 자신에게 성(섹스) 중독의 문제가 있다고 진술한 것을 경찰이 공개한 뒤 범행동기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인명을 살상하고 달아났다가 체포된 용의자의 진술을 사건 발생 당일에 여과 없이 공개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이는 가운데, 인종 혐오에 따른 증오범죄일 가능성 무게를 두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경찰은 아직 범행동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이르다면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현지언론 용의자 성중독 주목…중국 '거악' 규정 페북 글은 삭제돼
애틀랜타 경찰과 시 당국은 17일(현지시간) 총격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이 이번 사건은 인종적 동기가 아니라면서 자신이 성 중독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롱은 자신이 성중독 가능성을 포함해 몇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당국은 설명했다. 용의자가 스파와 마사지숍들이 자신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으로 여겨 이를 제거하려 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다만, 경찰은 이 진술 외에 범행동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 충분히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CNN방송은 롱의 이런 범행동기의 가능성을 뒷받침할 만한 인터뷰를 보도했다.
롱과 2019~2020년 한 재활시설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타일러 베일리스는 롱이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성중독 문제로 괴로워했다고 CNN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재활시설 입소 기간에 롱이 자신의 문제가 여러 차례 재발했고 성적인 행위를 위해 마사지숍에 갔다고 자신에게 털어놨다고 전했다.
아울러 작년 섹스중독자를 위한 재활센터에서 롱의 룸메이트였다는 한 남자는 CNN과 인터뷰에서 "롱이 인종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용의자에게 성중독의 문제가 있었다 해도 이를 유력한 범행동기로 보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케이샤 랜스 보텀스 애틀랜타 시장도 이와 관련해 용의자가 범행한 스파들은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들이었으며 당국의 단속망에도 올라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인종 혐오에 따른 증오범죄일 가능성을 현재까지 가장 유력하게 뒷받침하는 것은 롱이 최근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SNS 글이다.
이 게시물을 캡처한 네티즌들에 따르면 해당 페이스북 글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중국을 '거악'으로 규정, 중국에 맞서 싸울 것을 선동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글에는 "중국은 코로나19 은폐에 관여돼 있다. 중국이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며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로 부르며 "그들은 '우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글에는 또 "(중국이) 미국인 50만 명을 죽인 것은 21세기에 세계적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한 그들 계획의 일부일 뿐"이라며 ""모든 미국인은 우리 시대 최대의 악인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적혀 있다. 다만, 이 페이스북 계정은 현재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한인회 "명백한 증오범죄"…오바마 등 저명인사들 잇따라 인종혐오 규탄
범행동기로 용의자의 성중독 문제가 거론되자 한인 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LA) 한인회는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은 "명백한 증오범죄"라며 용의자의 '성 중독'을 사건의 동기로 보는 것은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LA 한인회는 특히 "증오범죄 가능성이 매우 큰데도 이번 사건을 보도하는 미국 미디어들이 (경찰 발표를 인용해) 용의자가 성 중독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 증오범죄 가능성을 애써 감추는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배경으로 최근 급증하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를 위한 이익단체인 AAPI에 접수된 증오범죄 피해사례만 해도 작년 3월 이후 3천800건에 이른다.
지난 2월엔 샌프란시스코에서 84세 태국계 남성이 19세 청년의 공격을 받고 숨졌고, LA 한인타운에서는 20대 한국계 남성이 무차별 폭행과 인종차별 폭언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주요 대도시에서도 2019년과 2020년 사이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한 증오범죄가 급증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버나디노캠퍼스 집계에 따르면 아시아인 대상 증오범죄는 이 기간에 뉴욕시에서 3건에서 27건으로 늘고, LA에서는 7건에서 15건으로 늘었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미국의 저명인사들은 이번에도 잇따라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
먼저 한국계인 매릴린 스트리클런드(민주·워싱턴) 하원의원은 "우리는 인종적 동기에 의한 아시아·태평양계(AAPI)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 사건의 동기를 경제적 불안이나 성 중독으로 변명하거나 다시 이름을 붙이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용의자의 동기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희생자들의 면면을 보면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흑인민권운동의 '역사'인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딸 버니스 킹 목사도 "증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슬프다. 아시아인들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대권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폭력 급증은 점점 커지는 위기"라면서 "우리 공동체와 리더들이 이 증오를 멈추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계 코미디언 마거릿 조도 "매우 화가 난다. 테러리즘이고 증오범죄다. 우리를 죽이는 것을 멈추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유명 방송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숀다 라임스도 "지난밤 사건은 순전히 인종 증오에 따른 행위다. 흑인이자 아시아계인 아이를 둔 한 엄마로서 내게는 매우 가까운 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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