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희생 업소 '적막'…경찰·폴리스라인 모두 철수하고 업소는 문 잠겨
추모 꽃다발 한가득…'연대' 피켓 들고 흑인 1인 시위, "인종범죄" 목소리도
취재진 북적…이웃 타투숍 매니저 "옆집서 일어난 일 정말 끔찍"
(애틀랜타=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정말 슬픈 일이 벌어졌어요. 이번 일은 인종적인 범죄예요. 차별받고 있는 인종 간의 연대를 위해 이렇게 나왔어요."
1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피드먼트 로드.
3명의 소중한 목숨이 총격에 스러져간 참혹한 현장인 골드스파 정문 앞에서 흑인 여성 캣 배거가 빗속에서 피켓을 들고 이른바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가 움켜쥔 피켓에는 'Black, Asian Solidarity'(흑인과 아시안의 연대), '#StopAsianHate'(아시안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이번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인종적인 범죄로 보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차별받는 인종 간의 연대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백인 경찰관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 열풍이 불었던 미국이었기에 동병상련을 느낀 듯했다.
골드스파 정문 계단 앞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적지 않은 추모 꽃들이 때마침 내리는 스산한 봄비를 맞고 있었다.
꽃들 사이로 '우리는 서로를 지킬 것이다'(We will defend each other), '서로 사랑해야 한다'(We must love each other)고 적힌 글귀도 보였다.
일부 피켓엔 '연대하라'(Stand in solidarity), '우리 모두가 가치가 있는 세상을 상상하라'(imagine a world where we all count) 등 이번 사건을 인종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그대로 담겨 있었다.
골드스파에서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면 또 다른 피해 업소인 아로마세러피스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두 곳이 사실상 마주 보고 있다. 이곳 역시 정문 앞에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추모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꽃을 들고 이곳을 찾은 시민인 앨리 콘졸라는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는 말이 비극에 대한 절제된 표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꽃다발을 들고 온 이유를 묻자 "그냥 와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인종범죄로 보느냐고 묻자 "인종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것 같다"면서 "누구든 간에, 목표로 했던 게 뭐든지 간에 정말 끔찍한 비극"이라고 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두 곳 업소에서 한인 4명이 숨졌다.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나머지 한 곳을 포함해 모두 3곳의 마사지숍에서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은 무차별 총격을 가해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사건 발생 만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장에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현지 방송으로 전날 봤던 폴리스라인도 모두 걷어간 상태였다. 현장 감식을 포함해 사건 현장 수사를 마무리한 듯 보였다.
다만 두 업소 모두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일부 취재진만 사건 현장 주변을 왔다갔다 할 뿐 전날의 참혹한 총격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골드스파와 바로 이웃한 타투(문신)숍을 들어갔다. 이곳 매니저인 앤서니 스미스는 기자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더니 몇 마디 말을 던졌다.
"모든 게 미쳐 돌아간다. 바로 옆집에서 일어난 일인데, 난 정말 아직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흑인인 그는 이번 사건을 인종적인 범죄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 사람이 인종적 사건으로 기소됐건 강도로 기소됐건 어느 쪽이든 정말 끔찍한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 언론의 취재 열기도 뜨거운 듯했다. 애틀랜타 지역 언론은 물론 NBC, ABC, 폭스뉴스 등 전국 방송사들도 사건 현장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지난여름 'BLM' 폭풍에 휩싸였던 미국 사회였기에 아시아계가 다수 희생된 이번 사건으로 또다시 충격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사 기자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슬프다"고 했다.
다른 방송사 취재진은 "슬프다"면서 "아직은 의미가 뚜렷하지 않은 범죄 같다"고 말했다. 인종 혐오범죄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미 수사당국이 '성 중독'에 빠졌다는 용의자의 진술 등을 공개한 탓으로 보였다.
honeyb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