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때도 단교 안 했는데…말레이 北사업가 인도에 파국

입력 2021-03-19 10:41  

김정남 암살 때도 단교 안 했는데…말레이 北사업가 인도에 파국
주쿠알라룸푸르 대사관에 남아있던 북한 직원 등 10여명도 철수 예상
말레이-북 관계 정상화 추진했으나 총리 바뀌고 코로나 사태에 원점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2017년 '김정남 암살사건' 때 단교(斷交) 직전까지 갔던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19일 결국 끊어지면서 북한의 동남아 핵심 거점이 사라지게 됐다.



이날 북한 외무성은 말레이시아가 북한인 사업가 문철명(56)씨를 불법 자금세탁 등 혐의로 미국에 인도한 사건과 관련해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미국에도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말레이시아는 1973년 북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전통적 우호국이었다.
하지만,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VX신경작용제로 암살당한 뒤 양국 관계는 급격히 멀어졌다.
두 나라는 상대국 대사를 맞추방했고, 북한은 자국 내 말레이시아인을 전원 억류해 인질로 삼았다.
말레이시아는 결국 자국민을 전원 송환하는 조건으로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에 넘기고 관계 정상화를 선언했지만, 저자세 외교 논란이 일면서 이후로도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현재까지 양국은 대사를 다시 보내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의 외교관 수는 2017년 초 기준으로 무려 28명에 달해, 이들 중 상당수가 외교관으로 위장한 공작원이나 외화벌이 일꾼일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김정남 암살사건' 이후 대사 없이 외교관 2∼3명과 이들의 가족, 행정직원 등 10여명이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치범 주말레이시아 한국 대사는 작년 가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7년 2월 암살사건 이후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비자 면제협정 자체를 파기한 상태"라며 "주북한 말레이시아 대사관도 실질적 폐쇄상황"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2019년 5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인도 요청을 받아 문씨를 쿠알라룸푸르 외곽 아파트에서 체포했다.
1년 9개월만인 이달 9일 "미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법정에는 문씨 가족은 물론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자리를 지켰다.
북한이 이날 "말레이시아 당국은 무고한 우리 공민을 '범죄자'로 매도하여 끝끝내 미국에 강압적으로 인도하는 용납 못 할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며 단교를 선언함에 따라 대사관에 남아있던 직원들의 전원 철수에 관심이 쏠린다.
주말레이시아 한국 대사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2019년 가을만 하더라도 전면 정상화할 조짐이 보였으나 총리가 마하티르 모하맛에서 무히딘 야신으로 바뀌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과거 22년 장기 집권했던 마하티르 총리는 15년만인 2018년 5월 다시 총리에 오른 뒤 "누가 김정남 살해를 지시했는지 밝힐 직접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국교를 단절할 수는 없다"며 북한과 관계 정상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특히, 2019년 10월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18차 비동맹운동(NAM) 회의에서 당시 최룡해 북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난 뒤 "양국 관계 정상화와 평양 주재 말레이시아 대사관 재개에 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하티르는 2020년 2월 총리직 사임 후 재신임이라는 '정치 승부수'를 띄웠다가 압둘라 국왕이 무히딘을 총리로 지명하면서 권력을 되찾지 못했다.
마하티르가 총리직 탈환을 시도했지만, 무히딘은 코로나19 비상사태를 내세워 정권을 지켰다.
후 치우 핑 말레이시아국립대 정치사회학과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 특파원에게 "마하티르와 달리 무히딘은 북한과 개인적 연결점이 없기에 무히딘 정부는 북한 정책에 아무런 우선권을 두지 않았다. 무히딘과 마하티르는 라이벌 관계이지 않으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어 "문철명의 재판은 정치적 관심을 받지 못했고, 코로나19 사태도 한몫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북한이 고위급과 실무급 대표자들을 말레이시아에 보내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긴 했지만, 김정남 암살사건을 겪은 말레이시아 측이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noano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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