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 잔액의 0.03% 유력…"5년 일몰 못믿어, 출연금도 계속 불어나는 구조"
(서울=연합뉴스) 은행팀 = 은행권이 사실상 '이익공유제'의 일환으로 이르면 올해 7월부터 햇살론 등 서민금융 재원에 해마다 1천억원 이상을 내놓는다.
정부와 국회가 '대출로 돈을 버니 이익을 공유하라'는 취지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기 때문인데, 은행권에서는 "세금으로 해결해야 할 서민금융 복지 재원을 사기업인 은행에 떠맡기는 셈"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이르면 7월부터 은행·보험사 등도 햇살론 재원으로 의무 출연
21일 금융권과 국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여야 합의로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서민금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서민금융진흥원은 현재 정부와 금융회사의 출연금·기부금·휴면예금 운용수익금 등을 재원으로 햇살론·미소금융 등 서민금융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햇살론의 보증 재원으로 상호금융기관과 상호저축은행이 해마다 1천800억원 정도를 내왔는데, 협약에 따라 지난해 한시 출연 기간이 종료돼 올해부터 햇살론과 같은 서민 신용보증 상품을 공급하려면 신규 재원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 법적 근거로서 추진되는 것이 바로 이번 서민금융법 개정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상호금융·저축은행 뿐 아니라 은행, 보험사, 여신전문회사 등 가계대출을 취급하는 모든 금융기관으로 출연 범위를 넓히고 출연 규모도 연간 1천800억원에서 2천억원으로 늘리는 것이다. 정부도 민간 출연 규모에 맞춰 복권기금 2천억원을 보탤 예정이다.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은만큼, 이후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등도 무난히 통과될 가능성이 커졌다.
출연요율, 출연절차 등 세부 기준은 일단 하위 법령에 위임됐지만, 이번 법안 심의 과정에서 출연요율은 각 금융기관의 전체 가계대출이 아닌 신용대출 잔액의 0.03%로 사실상 정해졌다.
금융기관 종류별 연 출연금은 ▲ 은행 1천50억원 ▲ 여신전문회사 189억원 ▲ 보험사 168억원 ▲ 농수산림조합 358억원 등으로 알려졌는데, 은행권의 지난해 신용대출 잔액 규모가 약 350조인만큼 이 가운데 0.03%가 1천50억원에 들어맞는다.
아울러 이번 개정안의 부칙 제2조에는 '개정 규정은 5년간 효력을 갖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5년 후 일몰이 예고된 한시법이라는 얘기다.
일정대로 순조롭게 국회를 통과하면 개정안은 부칙에 명시된대로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 당국 "금융권도 합의" vs 은행 "규제산업 빌미로 사기업에 부담 떠넘겨…관치금융"
당장 3개월여 뒤부터 새로 1천억원이 넘는 서민금융 관련 재원을 의무적으로 내놓게 된 은행권의 속내는 복잡하다.
금융위원회는 '복지 재원 부담을 민간 금융회사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정무위 의원들에게 "그동안 금융권과 수차례 간담회 등을 통해 협의해왔으며, 기본 추진방안에 대해 금융권과 합의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합의'했다고 보기에는 은행권의 불만이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회와 정부의 논리는 신용대출이 라이선스(허가) 사업이고, 은행 등이 그 라이선스 제도 아래 대출 사업을 통해 이익을 내니 공공을 위해 이익 중 일부를 서민금융 재원으로 부담하라는 것"이라며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정부와 국회가 세금으로 감당해야 할 복지 재원을 사기업인 은행과 금융기관에 떠맡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시중은행은 정부가 지분을 가진 금융기관이 아닌 주주가 주인인 금융회사인데, 은행을 통해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하는 것은 과거 관치 금융 시절의 발상"이라며 "은행도 저금리 시대 장기화, 핀테크(금융기술) 업체와의 경쟁 등으로 미래 생존을 위해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여전히 정부가 규제산업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부담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은행의 경우 서민금융 상품을 직접 운용하기 어려운 입장인 만큼, 서민금융 재원 출연이 영업이나 사업과의 직접적 연관 고리가 약한 일방적 '기부', '부담금'에 불과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실제로 지금까지 저축은행과 출연금을 분담해온 상호금융조차 햇살론을 취급하지 않아 저축은행 홀로 자기 출연액의 60배에 이르는 대출 상품을 운용해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나 국회는 너희(은행)도 재원 출연을 하는 만큼, 관련 서민금융 상품을 취급하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현재 햇살론 금리가 보통 17.9%인데, 시중은행이 그런 고금리 소매상품을 운용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데다, 손해를 보지 않고 서민금융 상품 금리를 적정수준으로 책정하기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난색을 보였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어쩔 수 없이 신용 열위 고객 대상의 신상품을 취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코로나 관련 신규 금융지원, 대출만기 연장, 이자 유예 등으로 안 그래도 잠재적 부실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기존 2금융권 거래 고객에까지 추가적 지원을 하기에는 부담이 클 뿐 아니라 인위적 조정을 통해 신용이 약한 2금융권 거래 고객이 1금융권으로 흡수될 경우 연체·부실 증가로 다른 고객의 대출 금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5년 일몰'도 믿기 어렵다는 게 은행권의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조성된 4천억∼5천억원의 보증 재원을 바탕으로 많게는 20배인 10조원의 서민 대출이 일어날 수 있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10조원의 대출을 해주고, 과연 5년 뒤 제도가 끝났다고 지원을 끊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신용대출 잔액을 기준으로 출연금을 걷는 방식도 문제로 지적됐다. 신용대출 잔액에 0.03%의 요율을 곱해 출연금을 걷기로 했지만 '출연 한도'를 정하지 않아 몇년 뒤 은행권이 부담할 출연금 규모가 1천억원을 크게 웃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계속 가계대출이 급증할 텐데, 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담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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