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밀착 "제재 용납 못해…미, 냉전시대 동맹으로 국제사회 법적 틀 파괴"
중국 "서방 행동은 중국 전진 막을 수 없으며 역사 발전도 되돌릴 수 없다"
(서울·베이징·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김윤구 김형우 특파원 = 중국과 러시아가 23일(현지시간) 서방 세계를 향해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거나 이를 통해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구이린(桂林)에서 회담 후 내놓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고 로이터·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양국 외무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주권국가가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다른 나라들이 인정해야 한다면서, 민주주의에 있어 표준 모델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민주화 추진을 구실로 주권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한 국제적 안정을 위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회담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양국 외무장관은 입을 모아 미국 등 서방을 맹비난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날 회담에서 "최근 며칠간 소수 서방세력이 잇달아 무대에 올라 중국에 대한 흑색선전을 했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으로 함부로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22일(현지시간) 중국 서부 신장(新疆) 지역의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문제삼으며 중국을 향해 동시다발적인 제재를 가한 것에 응수한 것이다.
중국은 신속하게 유럽 측 인사 19명과 EU 정치안보위원회 등 단체 4곳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친강(秦剛) 외교부 부부장은 전날 밤 니콜라스 샤퓌 주중 EU 대사를 불러 EU의 중국 제재 결정에 항의했다.
왕 부장은 "시대 흐름을 거스른 (서방의) 행동은 중국의 전진을 절대로 막을 수 없으며 역사 발전의 조류도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EU의 제재와 관련 "거짓말에 바탕한 이른바 제재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이틀 일정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한 라브로프 장관도 최근 러시아와 중국을 거세게 압박하는 유럽과 미국을 향해 강력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와 중국 모두 유럽과 서방세계의 일방적 제재를 용납할 수 없는 일로 간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양국은 미국이 냉전시대의 정치군사적 동맹을 통해 국제사회의 법적 틀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러시아와 중국 및 여러 국가의 공동 노력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고 라브로프 장관은 강조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또 다른 나라의 비우호적 행동으로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라브로프 장관은 EU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파괴하면서 러-중 관계가 러-EU 관계보다 더 빠르게 진전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의 일방적 조치로 러-EU 관계가 파괴됐다. 현재 이 양자 관계는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유럽이 수년간 조성된 모든 메커니즘을 파괴하면서 관계를 훼손했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 이익을 중시하려는 일부 유럽국가들과의 파트너십만 유지하고 있다"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보다 더 빨리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유럽이 양자 관계의 문제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여길 때만 EU와의 협력 강화를 위한 접촉에 응할 준비가 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최근 EU는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구속 수감, 체첸공화국 내 인권 유린 등과 관련해 러시아 인사들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그는 이른바 백신 외교와 관련해서도 "러시아와 중국을 기회주의자로 몰아붙이려는 서방의 시도는 목표를 크게 빗나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백신 외교의 동기는 인도주의적인데 있으며, 결코 지정학이나 상업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현재 미국 달러화 중심의 국제 통화 및 금융 질서를 대체하기 위한 노력을 러시아와 중국이 기울이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포괄적 파트너십과 전략적 상호협력의 관계를 앞으로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국은 국제 여행 패스의 사용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공동성명은 미국과 중국이 지난주 알래스카 고위급 회담에서 첨예한 갈등을 재확인한 가운데 나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라브로프 장관의 방중을 통해 대미 견제를 위한 전략적 연대를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친분을 과시하면서,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중·러 전략적 연대 강화를 꾀해왔다.
이날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핵심이익 문제에서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발전의 길에서 중요한 동반자가 될 것이며 국제 이슈에서 기둥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 대변인은 또 "어느 나라든 소문과 거짓말로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의 이익과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중국은 단호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해 EU 외에 미국 등 다른 나라들에 대한 반격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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