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일 적용인데 전산시스템 등 미비…당국 가이드라인 '늑장'도 혼란 가중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김연정 성서호 기자 =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주요 시중은행들이 비대면 상품 판매와 AI(인공지능) 서비스 등을 속속 중단하고 있다.
전산시스템과 영업 프로세스(절차)에 상품설명서 의무 전달 등 바뀐 규정을 적용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융당국은 관련 감독규정과 가이드라인(업무지침)을 예상보다 늦게 마련해 은행권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은행들은 금소법을 위반한 '첫 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서비스 일시 중단과 이에 따른 영업 타격까지 감수하는 분위기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키오스크(무인 단말기)를 통한 상품 신규 판매를 일제히 중단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25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STM(스마트 텔러 머신)에서 새로 입출금 통장을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STM은 일반 ATM(현금출납기) 기능에 통장·체크카드 신규 발급, 통장 재발행 등의 서비스까지 가능한 기기를 말한다.
금소법에 따르면 입출금 통장을 새로 만들 때 약관, 상품설명서, 계약서를 고객에게 줘야 하는데, STM에서 수십 쪽에 달하는 설명서를 교부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자메일로 전달하는 시스템 등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중단한다는 게 KB국민은행의 설명이다.
신한은행도 마찬가지로 STM과 같은 성격의 '유어스마트라운지(YSL)' 내 서비스 중 상품 신규·해지 서비스 등을 중단한다. 중단 기한은 상품설명서 교부 등 금소법에 맞춰 시스템을 갖출 때까지다.
신한은행은 거점 점포 등에 모두 37대의 유어스마트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키오스크를 통한 예금과 펀드의 신규 판매, 신용카드 신규 발급 등 키오스크 일부 기능을 25일부터 멈춘 뒤 4월부터 순차적으로 재개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키오스크 40여대를 운영 중으로, 그 외 다른 업무는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이뤄진다.
하나은행도 AI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인 '하이로보'의 펀드 신규·리밸런싱(재조정) 거래를 25일부터 5월9일까지 일시 중단한다. 하이로보는 로봇이 맞춤 펀드를 추천해주는 시스템이다.
금소법 시행에 따라 '하이로보'의 마켓 포트폴리오 구성 관련 알고리즘 및 펀드 가입 프로세스 등을 변경하기 위해 서비스를 중단하게 됐다고 은행 측은 설명했다.
비대면 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사례도 있다.
NH농협은행은 금소법 시행에 맞춰 설명 의무 강화 등 법규 준수를 위해 25일부터 일부 펀드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서비스 중단 대상은 펀드 일괄(포트폴리오) 상품과 연금저축펀드계좌의 비대면 신규 가입이다. 농협에서 개별 펀드 상품은 여전히 가입이 가능하지만, 여러 펀드 상품을 엮는 일괄 가입이 안 된다는 뜻이다. 판매 재개 시점은 미정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펀드 일괄이든 연금저축펀드계좌든 금소법에 맞춰 전산 개발은 마쳤으나 철저한 준비와 검증을 위해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이라며 "조속히 가입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AI 채팅상담 시스템인 '하이챗봇'을 통한 예·적금 가입 서비스를 이날 오후 5시부터 일시 중단했다. 금소법 시행에 따라 하이챗봇 상품 가입 프로세스 정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25일부터 시행되는 금소법의 골자는 일부 금융상품에만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설명의무·불공정영업행위 금지·부당권유행위 금지·허위 과장광고 금지)를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적합성, 적정성 원칙을 제외한 나머지 4개 판매규제를 위반한 금융사에는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는 데다, 법 적용 기준도 모호해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지는 부분이 있다"며 "상품 위험도와 가입 규모 등에 관계없이 모든 상품에 6대 판매 원칙이 일괄 적용돼 손님도, 은행도 모든 업무처리 과정이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yjkim8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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