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재산공개 대상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신화에 대한 믿음은 여전했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5일 공개한 2020년 재산변동 사항을 보면 재산공개 대상 중앙정부 공무원 759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388명(51.1%)이 본인이나 가족 명의의 토지를 가지고 있다고 신고했다.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도 148명(19.5%)이나 됐다. 중앙부처 공직자와 산하 기관 임원, 검·경 고위직, 국립대 총장 중 절반은 땅을 가지고 있고, 5명 가운데 1명은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셈이다.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에서 공직자들이라고 땅이나 다주택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민감한 정책을 입안하거나 집행하며 핵심 정보들을 접할 기회가 많은 이들이 땅이나 집을 많이 가지면 이해충돌이나 투기 의혹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노영민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다주택자는 한 채만 남기고 다 팔라고 얘기했지만, 현실은 정부 방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국회의원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이날 공개한 지난해 말 기준 재산변동 신고 내용에 따르면 국회의원 298명(국무위원인 이인영 전해철 의원 제외) 가운데 49명이 다주택자였다. 국회의원 6명 가운데 1명꼴로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로 2채 이상의 주거용 부동산을 보유한 것이다. 소속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31명, 더불어민주당 12명, 열린민주당 1명, 무소속 5명이라고 한다. 지난해 7월 31일 경제정의실천민주연합이 다주택자라고 밝힌 민주당 43명, 국민의힘 41명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집 없는 중산 서민층의 눈높이로 봤을 때 미흡한 것은 마찬가지다. 더욱이 여당인 민주당 의원 3명이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로 택지 지정 5년 전후에 3기 신도시 인근 땅을 샀다고 신고한 대목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김한정 의원은 지난해 7월 부인 명의로 경기도 남양주시 왕숙 신도시 밭 765㎡를 샀다고 신고했고, 서영석 의원도 부천 대장 신도시 인근 토지 438㎡를, 김경만 의원은 시흥시 장현동 소재 임야 66㎡, 99㎡를 배우자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행정부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이 상황에 따라 땅이나 다주택을 보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의 녹을 먹고 재산을 등록해야 하는 공직자라면 그런 자산을 보유하게 되는 동기가 의심스러워서는 안 된다. 국가가 공익 목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에도 부합하고 국민 눈높이에도 어느 정도 기준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중앙부처 실장급 고위 간부가 세종시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발표 11개월 전에 해당 지역 땅을 샀다가 장모 명의로 되판 사례나, 부인 명의로 산단 지역 토지를 매입한 세종시 의원의 사례는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명백한 투기행위로 볼 수 있다.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는 서울이나 경기 등 수도권에 땅이나 집을 가진 경우도 많았는데 이를 두고 보유 동기를 의심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신도시 땅 투기 사태 이후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여론에 부응해 부동산 투기 근절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종합대책을 마련해 곧 발표할 예정이다. 국가수사본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합동 특별수사본부도 공직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고, 특별검사 도입에 합의한 정치권도 한 점 의혹 없는 수사를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국회는 24일 '투기·부패 방지 5법' 가운데 공공주택 특별법, LH 법,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 부동산값이 너무 올라 허탈한 일반 서민의 눈으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는 용납하기 힘들다. 특수본은 재산공개나 제보를 통해 새로 드러나거나 확인된 투기 의혹을 대상으로 철저히 수사해 투기 여부를 가려내고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법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드러나면 범정부 차원에서 속도감 있게 대응하기를 바란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