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쟁이'·'스낵쟁이' 자처…새우깡·신라면·안성탕면 이름 직접 고안
형 신격호 롯데 창업주와 갈등 끝 창업…후계자는 장남 신동원 부회장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27일 세상을 뜬 농심 창업주 신춘호 농심 회장은 신라면 등을 개발해 '라면왕'으로 불린 인물이다.
'신라면', '짜파게티', '새우깡' 등 국내 식품업계를 대표하는 히트 상품들의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 "우리 손으로 라면 만들자"
고인은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국내 롯데를 이끌었다.
그러나 1965년말 라면 사업 추진을 놓고 형과 갈등을 겪은 끝에 라면 업체 롯데공업을 설립하며 독립했다. 1978년 롯데공업의 사명을 농심으로 변경하면서 롯데와는 완전히 결별했다.
고인은 1965년 라면 사업에 진출하며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창업 초기에는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며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고인은 이에 회사 설립 초기부터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는 뒤지지 말라'는 취지에서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뒀다.
고인은 1965년 이래 56년간 농심을 이끌며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 문구로 익숙한 '농심라면'(1975년)을 비롯해 '신라면'(1986년), '짜파게티'(1984년) 등 다수의 인기 라면 제품을 개발했다.
신라면과 짜파게티는 각각 현재 국내 라면 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달리는 제품이다. 농심의 지난해 라면 매출은 2조868억원에 달했고, 이 가운데 신라면의 수출액은 4천400억원을 넘겼다.
농심은 1985년 이래 라면 사업에서 36년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인은 라면 이외에도 1971년 우리나라 최초의 스낵인 '새우깡'을 개발했다. 새우깡은 4.5t 트럭 80여대 물량의 밀가루를 쏟아부어 개발됐다.
신춘호 회장은 새우깡 개발 당시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 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 어린 딸 발음에서 '새우깡' 탄생…남다른 브랜드 감각
고인은 식품업계에서 신라면이나 새우깡 등 대표 히트 상품의 이름을 직접 고안했던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춘호 회장은 1970년 유명 조리장을 초빙해 7개월간의 개발을 거쳐 국내 최초 짜장라면인 '짜장면'을 내놔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시장에 쏟아져 나온 비슷한 제품의 낮은 품질에 싫증을 느낀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말았다.
신춘호 회장은 이에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다"며 브랜딩을 강조하고 나섰다.
고인은 이후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 '안성'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을 만들어냈다.
K-라면의 간판 스타인 신라면도 그의 작품이다.
고인은 1986년 신라면 출시 당시 "저의 성(姓)을 이용해 라면을 팔아보자는 게 아니다"라며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신(辛)'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농심은 "신라면은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며 "당시 브랜드는 회사명을 많이 썼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당시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신라면을 밀어붙였다.
농심에 따르면 신춘호 회장의 마지막 작품은 지난해 10월 출시된 '옥수수깡'이다.
그는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 감자깡, 고구마깡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고 말했다.
농심은 "고인은 자신을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고는 했다"고 소개했다.
◇ 별세 이틀 전 경영서 공식적으로 물러나…후계자는 장남
신춘호 회장은 별세 이틀 전인 이달 25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않으면서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난 상태였다.
차기 회장에는 고인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신 부회장은 지난 주총에서 사내 이사로 선임됐다.
신 부회장은 1997년 농심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데 이어 2000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농심 경영을 맡아왔다.
농심에선 신 회장의 세 아들인 신동원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을 중심으로 승계 작업이 진행돼 왔다.
신동원 부회장은 농심의 최대주주인 농심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신동원 부회장의 농심홀딩스 지분은 42.9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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