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라비다] 애국지사 임천택 쿠바 후손 "증조부 조국에 공부하러 갑니다"

입력 2021-03-29 07:07  

[비바라비다] 애국지사 임천택 쿠바 후손 "증조부 조국에 공부하러 갑니다"
증손자 임대한 씨, '쿠바 1호' 정부 초청 장학생 도전
"조상들이 지키려던 한국…한·쿠바 잇는 다리 되고 싶다"

[※ 편집자 주 : '비바라비다'(Viva la Vida)는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인,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이들을 포함해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쿠바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천택(1903∼1985) 선생은 어린 시절 떠난 후 그토록 그리워했던 조국 땅을 생전에 끝내 밟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모국 사랑을 잘 아는 후손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 선조들의 모국을 알기 위해 한국을 찾고 있다. 한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펜한 안토니오 엥 임(25·한국명 임대한) 씨도 그중 하나다.
쿠바 아바나에 사는 임천택 선생의 증손자 임대한 씨는 28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은 오랜 목표였다"고 말했다.
임씨는 최근 우리 정부의 정부 초청 외국인 장학사업(GKS) 대상자로 공관 전형을 통과했다.
당초 쿠바는 GKS 대상국이 아니었지만, 쿠바를 관할하는 주멕시코 대사관의 노력 속에 쿠바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는 올해부터 재외동포 부문에서 한인 후손 몫으로 1명이 배정됐다. 첫해 지원자 3명 중 심사를 통해 임씨가 선발됐다.
국내에서의 최종 심사만 통과하면 임씨는 쿠바 이민 100주년에 '쿠바 1호' 정부 초청 유학생으로 한국행에 오르게 된다.

임씨의 증조부 임천택 선생은 2살 때인 1905년 부모를 따라 에네켄 농장 노동자로 멕시코에 이민했다가 1921년 쿠바로 건너갔다.
임천택 선생은 일제시대 쿠바에서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회장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학교를 세워 후손 민족교육에도 힘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임천택 선생의 아들이자 임대한 씨의 종조부인 임은조(1926∼2006·헤로니모 임) 선생은 체 게바라 등과 함께 쿠바 혁명의 전면에 섰고 쿠바 산업차관을 지냈다. 쿠바 한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힘썼다.
임대한 씨는 "내 한국 뿌리와 조상들의 애국적인 행동이 정말 자랑스럽다. 선조들은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조국을 위해 희생했다"며 한국이 자신의 모국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대한'이라는 이름은 다큐멘터리 '헤로니모 임' 제작을 위해 쿠바를 찾았던 전후석 감독이 지어줬다. 스페인어 본명 '펜한'과 마지막 음절이 같은 이 이름을 그는 소셜미디어 프로필로 사용하고 있다.
아바나에서 한국어도 공부해 한국어능력시험(TOPIK) 2급에 합격하고 지난해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우리와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미수교국 쿠바에서 나고 자란 임씨가 한국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은 모두 임천택 선생을 비롯한 선조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조상들은 후손들이 한국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도록 정말 노력하셨다. 후손들이 한국에 가서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뿌리를 아는 것을 매우 원하셨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임씨가 한국 유학을 꿈꾼 것은 단지 조상의 나라라는 이유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쿠바 명문인 아바나 호세안토니오에체베리아 공과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부터 인공지능(AI)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기술 강국'으로 잘 알려진 한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싶다고 했다.
머신러닝, 자연어 처리, 음성인식 등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AI 기술을 연구해 한국이 AI 연구개발에서 앞서 나갈 수 있게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옛날 임천택 선생이나 임은조 선생이 그랬듯 쿠바와 한국을 잇는 것도 임씨의 또 다른 포부다.
그는 "쿠바에서 한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조상들의 자취를 따라 양국의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며 "한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그를 위한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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