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고립 심화·백신외교 실패로 의회 사퇴 압박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정부의 외교수장이 '총체적 외교 실패'라는 평가 속에 사의를 표명했다.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에르네스투 아라우주 외교부 장관은 이날 측근들에게 사임 결심을 밝혔으며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도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라우주 장관은 최근 상·하원 의장을 포함해 의회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왔으며, 특히 카치아 아브레우 상원 외교위원장과 심한 공방까지 벌이면서 논란을 초래했다.
정치권과 외교가에서는 그동안 아라우주 장관의 지나친 친미-친이스라엘 노선이 브라질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켰고, 코로나19 사태 속에 백신 외교에도 실패하면서 인명피해 규모를 키운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지난 27일에는 300여 명의 브라질 외교관들이 아라우주 장관의 외교 노선을 비판하고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야권은 아라우주를 '역대 최악의 외교장관'이라고 부르면서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카치아 외교위원장은 "에르네스투를 다른 에르네스투로 바꾸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라며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 실용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할 인물을 새 장관으로 기용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법무부 장관 사퇴와 세 차례에 걸친 보건부 장관 교체에 이어 외교수장이 의회의 압박 속에 물러나면서 집권 2년을 넘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또다시 정치적 위기에 빠지게 됐다.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여론의 긍정적 평가는 그동안 여유 있게 30%를 넘었으나 최근 조사에서는 30% 붕괴 직전까지 밀린 상태다.
아라우주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2018년 11월 새 정부의 외교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취임 후 아라우주 장관은 이전 정부들의 외교정책을 친(親)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파시즘과 나치즘이 좌파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불렀다.
이스라엘에 밀착하려는 그의 행태는 아랍권의 집단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아랍권은 한때 육류를 포함해 브라질산 제품에 대한 보이콧을 시사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에는 사회적 격리 등 봉쇄 조치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 학살)가 자행된 집단수용소에 비유해 유대인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아라우주는 '중국 때리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브라질의 5세대 이동통신(5G) 사업을 둘러싸고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배제해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따르면서 중국과 갈등을 빚었다.
아라우주가 이끄는 외교부는 지난해 4월과 11월 등 최소한 두 차례에 걸쳐 중국 정부에 지국 주재 중국 대사 교체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대사 교체 요구를 외교 관행에서 벗어난 일로 규정하고 양국 관계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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