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연구진 "스트레스 탈모, 왜 생기는지 알아냈다"

입력 2021-04-01 16:57   수정 2021-04-01 18:07

하버드대 연구진 "스트레스 탈모, 왜 생기는지 알아냈다"
스트레스 호르몬, 모낭 휴지기 연장→장기간 모낭 재생 멈춰
유두 세포 Gas 6 분자, 치료 표적 부상…저널 '네이처'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탈모가 온다는 속설이 과학 실험을 통해 사실로 입증됐다.
만성 스트레스가 모낭(hair follicle) 줄기세포의 재생 기능을 방해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밝혀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모낭 줄기세포의 휴지기(rest phase)를 연장해 재생을 장기간 멈추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스트레스 신호가 모낭 줄기세포에 전달되는 분자 경로도 찾아냈다.
이 경로는 탈모 상태에서 머리가 다시 자라게 하는 치료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이 연구 결과는 31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수야츠에(Ya-Chieh Hsu) 줄기세포 재생 생물학과 부교수는 "스트레스가 모낭 줄기세포의 활성화를 늦추고, 조직 재생 주기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걸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모낭은 평생 재생 과정을 반복할 수 있는, 포유류의 몇 안 되는 조직 중 하나다.
모낭은 성장과 휴지(休止)의 사이클을 되풀이한다.
모낭 줄기세포가 활성화해 모낭과 모발을 재생하는 성장기엔 머리가 매일 자라지만, 줄기세포가 활동을 멈추고 쉬는 휴지기엔 머리가 쉽게 빠진다.
탈모가 생기는 건, 모낭 줄기세포가 계속해 휴지 상태로 있으면서 새로운 조직을 재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만성 스트레스를 받는 생쥐 모델의 모낭 줄기세포가 장기간 휴지 상태에 머문다는 걸 관찰했다.
이런 생쥐는 코르티코스테론(corticosterone) 호르몬이 평소보다 많이 분비됐다.
이 호르몬을 투여하면 정상 생쥐의 모낭 줄기세포에도 스트레스 효과가 나타났다.
코르티코스테론은 척추동물의 부신 피질에서 만들어지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 인슐린과 길항 작용을 한다.
생쥐의 코르티코스테론에 상응하는 게 인간의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는 코르티솔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나이가 들면 모낭의 휴지기가 길어지고, 모낭 재생도 느려진다.
연구팀이 생쥐의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차단하자 모낭 줄기세포의 휴지기가 극적으로 짧아지면서 끊임없이 성장기가 반복됐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차단으로 성장기가 되풀이되는 이 현상은 생쥐가 늙어도 중단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기초 수위의 스트레스 호르몬도 모낭 줄기세포의 휴지기를 조절하는 인자로 작용한다고 추정했다.
스트레스는 본질적으로 '부신-모낭 축'(adrenal gland-hair follicle axis)을 상향 자극해 모낭 줄기세포의 성장기 진입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 호르몬이 실제로 작용하는 건 모낭 줄기세포가 아니라 모낭의 근원 부에 있는 '진피 유두 세포 무리'(dermal papilla)였다.
진피 유두 세포는 모낭 줄기세포의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 수위가 변했을 때 진피 유두 세포에서 분비되는 게 확인된 인자는 없다.
연구팀은 이번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진피 유두 세포의 Gas 6 분비를 차단한다는 걸 밝혀냈다.
Gas 6는 모낭 줄기세포를 활성화하는 분자다.
스트레스가 진피 유두 세포에서 모낭 줄기세포 활성화 분자가 나오는 걸 막는다는 의미다.
논문의 제1 저자인 최세규(Sekyu Choi) 박사후연구원은 "Gas 6의 발현을 늘리면 휴지 상태에 있던 모낭 줄기세포가 재활성화해 모발 성장을 촉진한다"라면서 "Gas 6의 이런 작용은 스트레스가 있건 없건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수 교수팀은 지난해 1월 스트레스가 모발 색깔을 재생하는 모낭의 멜라닌 세포(melanocyte) 줄기세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한 바 있다.
스트레스가 교감 신경계를 자극하면 과도 발현한 멜라닌 세포가 고갈해 모발을 일찍 세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탈모와 새치는 똑같이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지만, 발생 기제는 전혀 다르다는 게 이번 연구에서 입증됐다.
머리가 셀 때 스트레스는 신경 신호를 통해 멜라닌 세포 줄기세포의 고갈을 유도하는데, 머리가 빠질 땐 부신 호르몬이 간접적으로 작용해 모낭 줄기세포의 재생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탈모가 생겨도 모낭 줄기세포가 고갈된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모낭 줄기세포가 살아 있다면 Gas 6 경로 등을 자극해 모낭 재생 기능을 되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연구 결과가 근원적인 탈모 치료법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수 교수는 "모낭 줄기세포의 활성화를 제어하는 메인 스위치는 멀리 떨어진 부신에 있고, 이 스위치는 활성화에 필요한 스트레스 임계치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라면서 "피부의 줄기세포를 이해하려면 피부를 넘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생쥐 실험 결과는 탈모로 고민하는 많은 사람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안전하게 적용하려면 아직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버드대의 기술개발 담당 부서는 이번 연구 결과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면서 후속 개발연구와 상업화에 동참할 협업 파트너를 찾고 있다.
che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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